상전벽해

2020.09.02 16:34:26

이정희

수필가

엊그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완전 꽁보리밥이다. 별식이라 해도 깔깔한 게 싫어서 쌀밥을 청했다. 쌀밥은 없고 보리쌀을 안칠 때 한 줌 얹은 게 있다면서 한 그릇 건네준다. 알투가리에 끓인 된장찌개와 호박 가지전을 넣고 비벼먹는 맛이 괜찮다.

쌀이 귀했던 시절 보리밥 위에 한 주먹 올려놓고 밥을 지었다는 '옥섞이'가 생각났다. 거무튀튀한 보리밥 위에 눈처럼 하얀 쌀밥은 집안 어른과 손님에게만 드렸었다. 남은 식구들은 주로 보리밥만 먹었는데 지금은 생각날 때마다 건강식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나처럼 보리밥이 싫은 사람은 짐짓 청해서 먹어야 했으니 이색적이다.

옥섞이 마냥 쌀이 들어가는 것은 그나마도 고급에 속했고 대부분은 보리밥을 먹었다. 하도 많이 먹어서 물려버린 사람도 꽤 있다고 보면 주식과 별식이 완전 바뀌었다. 오래 된 것도 아니고 5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감상이 남다를 수밖에.

요즈음 건강식으로 마를 빼놓을 수 없다. 가루로 만들어서 타 먹거나 감자처럼 쪄먹기도 하는데, 서동요에서 주인공 서동이 팔았던 거다. 서동의 정체는 역사에 나오는 대로 백제 무왕이었으나 마를 파는 장사꾼으로 변장한 뒤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우리 알고 있는 서동요를 부르게 했던 것.

지금 고구마가 흔한 것처럼 그 당시는 마가 지천이었다. 처음 일본에서 고구마가 들어왔을 때 낯설게 생각한 사람들은 마와 비슷하다고 했다. 서동요가 나오던 그 때와는 달리 지금은 건강식으로 바뀌고 고구마는 흔한 작물로 바뀌었다.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는 게 상전벽해라면 시기에 따라 바뀌는 게 참으로 많다. 우선 속담만 해도 '낫 놓고 기역자 모른다'고 하지만 지금 같아서는 '기역자 놓고 낫 모른다'고 해야 될 법하다. 이전에는 아주 흡사한 낫을 쓰면서도 까맣게 모르는 판무식꾼을 가리키는데 지금은 낫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수 있다. 기역 자는 너무 잘 알지만 낫은 생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다.

최근 연예인을 선망하는 젊은 층만 봐도 세상은 바뀌었다. 60년대 초, 배우나 가수를 지망할 때 심한 경우 가족과의 연을 끊으라는 선언도 어렵지 않게 나왔었다. 기껏해야 육십 년 안팎인데 옛날에는 더욱 심해서 광대라고 철저하게 이단시했다. 양반 계급과는 어울리지도 못했다. 양반들 또한 잔치가 있을 때 불러서 즐기기는 해도 함께 앉는 것조차 싫어했는데 지금은 인기 직업으로 상승되었다. 오랜 세월과 생활패턴 변화로 바뀐 직업에의 귀천 인식이 무척 낯설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세상 불변의 법칙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그 법칙이되 절대 바뀔 수 없는 기준은 있다. 돈만 해도 쉽게 모은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눈먼 돈 주워 봤자 눈 먼 돈 기질대로 금방 떠난다. 목표 달성도 계단을 밟듯이 차근차근 나가야지 뜬구름 잡는 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똑같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

또 하나 바꾸지 못할 거라면 가치관 내지 도덕관념이다. 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돈이 제갈량이라도 정직하고 성실한 바탕은 따를 수 없다. 남의 것 탐하지 않고 올곧게 살면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삶이다. 힘들다고 편법을 쓰면 떳떳할 수가 없다. 가난해도 천박하지 않은 품격과 고상한 경지를 통해 가치관을 높여야겠다. 세상은 바뀌어도 우리로서는 결코 바꾸지 못할 게 있다.

바뀌는 것은 변화의 탄력성이다. 묵묵히 수용은 물론 스스로 바꾸지 말아야 될 것도 헤아리는 조율 문제다. 자연스럽게 바뀌면서 살아야 할 이유를 주는 것도 있으니 먹구름 속에서도 태양은 빛나고 쥐구멍에도 볕든다. 모든 것은 곧 지나간다. 하늘을 봐도 먹구름만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은 바뀌듯 힘들어도 소망을 품고 사는 날을 꿈꾸어 본다. 가장 푸른 하늘은 태풍이 지나가야 보인다. 가치관만 영원하다면 삶은 언제나 희망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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