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후 시골인심도 사라졌다

2016.10.09 19:48:52

[충북일보=옥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따뜻하고 순수한 시골 인심마저 사라지게 했다.

할아버지가 마을 보건지소 직원이 항상 자신의 건강을 챙겨주는 고마움에 마음먹고 음료 한 박스를 사서 전해주려다 거절당했다.

또 감자·고구마 등 수확한 농산물을 들고 와 맛을 보이거나, 심지어 떡이나 부침개를 싸다 주기도 하던 순수한 마음도 기피하게 만들었다.

김영란법이 깨끗하고 건강한 사회로 가는 과정으로 평가될 수는 있지만 농촌지역은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정(情)에 의존해왔던 오랜 관습으로는 몸에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게 했다.

지역사회에서 인맥이나 유대가 강한 농촌에서는 그 변화의 충격파가 더욱 크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옥천군 군북면의 한 할아버지(85)는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 상태를 체크하고 한 달동안 먹을 약을 받기 위해 매월 한 차례 옆 마을에 있는 보건지소를 찾는다.

그곳에 갈때마다 자신을 반겨주는 직원들이 고맙고 언제나 챙겨주는 게 마음에 걸려 이달 초 약을 받으러 가면서 1만원짜리 비타민 음료를 샀다.

손녀뻘 되는 직원들을 위해 감사의 선물로 음료 상자를 전해주려다 직원들이 김영란법을 문제 삼아 한사코 받기를 거절하는 바람에 승강이 끝에 하는 수 없이 가져갔던 음료를 다시 들고 나왔다.

그는 할아버지뻘 되는 촌로의 순수한 성의까지 받아주지 않는 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그는 "그동안 보건지소에서 건넨 음료만 해도 내가 들고간 것보다 많다"며 "좋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시골 늙은이의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없게 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또 지난 5일 이장단회의가 열린 옥천군의 한 면사무소에서는 회의 뒤 이장과 면사무소 직원들이 따로 식사하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이 지역 이장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면사무소에 모여 회의를 한다.

군정 현안을 설명 듣고 건의사항 등을 내놓는 자리인데, 당연히 면장 등 공무원이 배석하고, 회의 뒤에는 자연스럽게 식사자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면의 이장단협의회장은 "회의가 끝나면 으레 국밥이나 칼국수 한 그릇 하는 자리가 마련되는데, 면 직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식사는 우리끼리 했다"며 "평소 호형호제하는 사이인데도 갑자기 삭막해진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골 면사무소는 말 그대로 사랑방이다.

주민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복지서비스를 요청하고, 불편을 하소연하게 된다.

옥천군의 한 면장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직원 스스로 외부인 접촉을 꺼리기도 하지만, 주민들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면사무소 방문을 자제하는 분위기"라며 "면사무소 중심의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하루가 다르게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옥천군청 기획감사실 관계자는 "직무 연관성 없이 식사 정도는 문제될 게 없고,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해 3만원 이하의 식사는 허용된다"며 "다만 아직 구체적인 판례 등이 없는 상태여서 경계가 애매한 탓에 직원들이 알단 피하려고 하고, 우리도 명쾌한 지침을 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옥천 / 손근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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