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이름 또 없습니다

2016.08.24 14:50:14

최창영

증평군 미래전략과장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한 구절이다.

물론 시인이 말하는 이름은 구체적인 꽃 이름이기보다는 사물의 존재 가치를 뜻할게다. 사물은 이름이 주어져야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고, 의미를 얻어야 존재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문득 구전민요 '나무타령'이 생각난다.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뽕뽕 뽕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입 맞춘다 쪽 나무, 너 하구 나 하구 살구나무, 갓난 애기 자작나무, 동지섣달 사시나무, 빌고 보자 비자나무, 바람 솔솔 솔 나무, 잘못했다 사과나무, 쥐 없어도 쥐똥나무, 복장 터져 복장나무, 불 밝혀라 등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재미난 마을 이름도 많은 것 같다.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여주시 하품리는 정품리, 증평군 죽2리는 원평리로 개명 했지만, 여수시 여자리, 정읍시 목욕리, 담양군 객사리, 기장군 대변리, 청도군 구라리, 순창군 대가리, 해남군 고도리, 충주시 야동리와 같이 이름을 그대로 지키기로 한 마을들도 많다.

마을 이름을 마케팅에 활용한 사례도 있다. 보은군 장안면 봉비리(鳳飛里)는 봉황이 둥지를 찾아 날아든다는 뜻이다. 보은군은 2013년 이곳 일원에 우진프라임을 유치했다. 상주시와 유치 경쟁에서 마을 이름을 적극 활용했다고 한다.

괴산군도 2011년 육군학생군사학교를 유치할 때 괴산에는 장군봉이 있어 여기서 훈련 받으면 장군이 많이 나올 것이라며 산 이름 마케팅을 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영월군 한반도면과 김삿갓면, 광주시 남한산성면, 울진군 금강송면, 고령군 대가야읍, 포항시 호미곶면, 충주시 중앙탑면과 같이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이 있는 이름으로의 개명을 통해 도시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을 팔고 있기도 하다.

물론 지난 7월22일 영주시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대법원에서 패소한 사례도 있지만, 지금도 함양군은 마천면을 지리산면, 양양군 서면을 대청봉면으로 개명을 시도하고 있고, 여주시는 능서면을 세종대왕면으로 변경하기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철에 맞지 않거나 쓸모없는 사물을 비유할 때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말을 쓴다. 여름 화로와 겨울 부채라는 뜻이다. 하지만 하로동선은 본래 '하로자습 동선삽화(夏·炙濕 冬扇·火)'로 여름 화로는 습기를 말리는 데 쓰이고, 겨울 부채는 불을 피우는 데 쓰인다는 말로 때로는 쓸모없을 법한 것들이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다는 뜻이다.

쓸모없을 것 같았던 땅 이름 하나가 이제는 지역의 상품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나의 사물에 불과한 것들도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우리 곁으로 다가와 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곳곳에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행정구역들이 탄생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구역 명칭을 정할 때 기존의 행정동 이름을 합성해 명칭을 정함으로써 도시와 마을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마을과 길, 다리하나, 건물 하나에도 역사와 문화를 입히고, 우리가 새롭게 조성하는 나무와 숲 하나에도 이야기가 있는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다. 그 이름들이 우리와 후손들에게 꽃이 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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