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와 탱자를 위한 행진곡

2016.03.09 14:43:52

최창영

증평군 미래전략과장

어릴적 야음을 틈타 친구들과 감자서리를 간적이 있었다. 원래 감자밭은 밭을 평편하게 고른 다음 두둑하게 쌓아올린 이랑과 이랑을 쌓기 위해 파낸 고랑으로 만들어져 있다.

감자서리에도 방식이 있었다. 이랑 위 감자 싹을 뽑고 감자를 캐는 것이 아니라 이랑 깊숙이 손을 넣어 감자만 빼오면 감자 싹은 한 동안 그대로 있어 주인은 서리 당한 것을 알지 못한다.

그날도 이런 방식으로 감자서리가 끝날 무렵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주인으로 생각하고 줄행랑을 쳤다. 그런데 친구 한 명이 돌아오지 못했고, 우리는 그 친구가 주인에게 잡힌 것으로 생각했다. 한참 후 무사귀환한 친구의 말이 가관이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빠져나오는데 누가 뒤에서 옷을 잡았고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그럴게요" 한참을 빌었는데도 주인이 말이 없길래 뒤를 돌아보니 주인은 없고 자기 옷이 탱자나무 가시에 걸려 있더란 것이었다.

탱자나무와 관련하여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회남(淮南)에 심은 귤을 기후와 풍토가 다른 회북(淮北)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 고사성어이다.

본래 뜻은 '귤이 변해서 탱자가 된다'는 말이니 부정적인 의미이다. 하지만 이것을 뒤집어 보면 회북(淮北)의 탱자를 회남(淮南)에 심으면 귤이 되는 그야말로 지화위귤(枳化爲橘)도 될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지난해 대학생이 뽑은 2015년 최고의 유행어가 '금수저', '흙수저'였다고 한다. 금수저는 돈 많은 부모, 잘나가는 부모 덕에 풍족하게 살아가는 청춘이다. 반대로 흙수저는 취업을 해도 빚부터 갚아야 하는 현실을 가진 아픈 청춘이다.

그래서 세상의 수많은 흙수저들은 노력만으로는 세상 살아내기가 힘들다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비하한다.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으로 인한 반감으로 때로는 '금수저'를 무조건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시절 친구와의 싸움에서 이겼던 꼬마 금수저 슈바이쩌는 싸움에서 진 친구의 '나도 너처럼 고기를 먹었으면 이겼을 것'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가난한 흙수저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세상에는 흙수저의 삶을 살아가는 훌륭한 금수저들도 있었다.

어쩌면 춘추 전국시대의 '귤화위지(橘化爲枳)'의 고사는 금수저였던 귤이 때로는 흙수저 탱자가 될 수 있고, 흙수저 탱자 또한 때로는 금수저 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차범근은 지독하게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전형적인 흙수저였다. 흙수저 차범근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달리고 또 달렸기에 금수저가 될 수 있었다. 금수저 차두리 또한 아버지만 믿고 달리기를 거부했다면 지금쯤 흙수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등학교 시절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로 시작되는 민태원의 '청춘예찬'를 외운적이 있었다.

그는 청춘을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말이라고 예찬했다. 그가 예찬한 청춘은 피가 끓고, 거선의 기관처럼 힘차며, 봄바람 처럼 따뜻한 그런 것이었다.

현실은 분명히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흙수저 타령보다는 한 겨울 추위를 이기고 새롭게 솟아나는 새싹처럼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것이 청춘이다.

청춘들이여! 이제 새학기가 시작되는 2016년 봄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절망보다는 지화위귤(枳化爲橘) 희망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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