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공화국

2016.07.27 13:56:29

최창

증평군 미래전략과장

1950년대 미국 젊은이 사이에서는 한 도로에서 서로 마주보며 차량을 질주하다 어느 한쪽이 방향을 바꾸면 지게 되는 '치킨게임'이 유행했다. 서양에서 겁 많은 동물의 상징이 닭 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제가 겁쟁이 닭들이 더욱 겁을 먹을 법한 중복이었다. 우리 속담에 닭만큼 자주 등장하는 속담도 없는 듯하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 민다'와 함께 고(故) 김영삼 대통령의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어록 또한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된 바 있다.

정부 또한 2003년 닭고기 소비 촉진을 위해 닭을 불러 모을 때 '구구'라고 부르던 것에 착안해 '모두 불러 모아 닭고기와 계란을 먹는 날'이라는 뜻으로 9월9일을 '구구데이'로 지정했고, '구구데이'는 국립국어원의 '신어 자료집'에 수록되기까지 했다.

복날과 함께 치맥(치킨+맥주)의 계절이 다가왔다. 치맥페스티벌이 열리는 곳까지 있다. 어제부터 시작한 대구 치맥페스티벌은 지난해 115만 명이 찾았고, 33만 마리의 치킨과 70만 캔의 맥주가 팔려나갔다고 한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주인공의 치맥 장면은 중국에서 한국식 치킨과 맥주가 불티나게 팔리는 효과와 함께 한류 바람을 타면서 중국시장에도 치맥 열풍이 불었다.

전국에는 3만2천여 곳의 치킨집이 생겨났고, 114 전화번호 안내에도 중국집에 이어 두 번째로 등재될 정도로 그 수가 많다고 한다. 치킨이 야구 경기 관람의 필수품, 야식의 제왕, 대중 음식의 국가대표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특히, 작년 한 해 우리나라 국민이 먹어치운 치킨은 9억 마리에 달했을 뿐 아니라 한집 건너 한집이 치킨집인 그야말로 '치킨공화국'이 되었다. 치킨 뿐 아니라 치킨의 원재료 겪인 닭을 재료로 한 음식인 삼계탕은 복더위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고, 지난달 말에는 중국 수출 길에 까지 올랐다.

이와같은 치맥 열풍, 삼계탕, 구구데이에 힘입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도계(屠鷄)된 닭은 9억6천696만 마리로 사상 최대였다고 한다. 1990년 1억4천754만 마리였던 도계 마릿수는 매년 늘어 지금까지 연평균 7.8% 증가했고 2014년 8억8551만마리와 비교해도 9.2%가 늘었다는 것이다.

국제 조약이 펭귄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살아 있는 닭이나 익히지 않은 닭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남극을 제외하고 지구상에 200억 마리가 넘는 닭이 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열풍을 넘어 광풍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구구데이는 조류독감으로 인한 양계 농가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지정되었다. 치킨의 역사 또한 어둡고 비참했던 흑인들의 노예 생활이 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흑인 노예들이 주인이 먹다 버린 닭 조각들, 뼈가 많은 부위인 날개, 목, 닭발을 뼈째 먹기 위해 튀겨 먹었던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궁핍했던 1970년대의 학창시절 소풍 갈 때 단골 메뉴로 몇 달 동안 모아두었던 삶은 계란이 최고 인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양은도시락 속 하얀 쌀밥과 밑에 깔린 계란 프라이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치킨 한 마리를 시켜도 아무렇지도 않게 몇 조각은 으레 남기고 버리는 극단적인 풍요의 시대, 과잉 소비의 시대에 삶은 계란 하나, 계란 프라이 한 조각이 궁핍했던 유년기를 눈물 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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