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의 죽음을 바라보며

2016.08.24 14:50:32

이태근

(사)흙살림 연구소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한 달째 지속되고 있다. 유래 없는 무더위와 열대야에 인간은 물론 자연도 신음하고 있다. 이 맘 때쯤이면 한반도를 달구었던 여름 더위를 물러나게 해 줄 태풍 소식도 들려올 때가 되었건만 올 해는 더위의 텃세가 너무 강력한 탓인지 한반도 근처로는 얼씬도 않은 채 지나가버린다고 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날씨는 올 해,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근 몇 년 전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는 가뭄, 홍수, 태풍, 한파 등 이상 기후로 인한 자연 재해들이 벌어지고 있다. 말로만 듣던 기후변화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요즘, 이러한 문제가 지속되는 원인에 대해 모두가 한 번 쯤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요즘 아침 산책길을 걷노라면 비소식도 없는데 길 위로 기어 나온 지렁이들이 아침 햇살에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말라죽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더위에 고생하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닌 것이다. 우리 밭 밑. 가장 낮은 곳에 살고 있는 이 작은 생명체들에게 무더위는 생사를 가르는 혹독한 재앙과도 같다. 시원하고 축축한 흙 속에서 사는 지렁이는 보통 15~25℃ 사이의 온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다. 지온이 30도 이상이 되면 흙 속을 나와 더 시원한 곳을 찾아 이동한다. 요즘처럼 밤 기온도 25도가 넘어가는 열대야가 지속되면 낮 동안 달궈졌던 땅 속의 온도도 쉬이 내려가지 않는다. 때문에 지렁이는 어딘지도 모를 시원한 곳을 찾아 여전히 뜨거운 시멘트 바닥위로 기어 나오는 모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피부로 호흡을 하는 지렁이에게 햇살은 타오르는 화염 그 자체이고 달궈진 시멘트 바닥은 뜨거운 철판 위에 맨살로 던져진 것과 같은 고통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과연 지렁이의 죽음을 보고 무엇을 생각할까. 어떤 이들에게 지렁이의 죽음은 그저 길을 더럽히는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겠지만 사실 지렁이의 죽음은 곧 흙의 죽음과도 같다. 땅 속의 쟁기라고 불리는 지렁이는 인류의 역사보다도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밟고 있는 기름지고 보드라운 토양을 만들어왔다. 지렁이는 흙과 함께 유기물을 섭취하여 장 속의 미생물과 함께 소화시킨 다음 똥으로 배출한다. 분변토라고도 알려진 지렁이의 똥은 유기물을 식물이 빨아들일 수 있는 양분의 형태로 만드는 동시에 흙 자체의 성질도 변화시킨다. 흙이 공기와 수분, 영양분을 충분히 머금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준다. 또한 똥과 함께 배출 된 미생물은 흙 속에서 유해한 세균이 자리 잡을 수 없도록 경쟁하여 토양 생태계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지렁이는 이렇듯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버리는 온갖 찌꺼기와 유기물들을 소리 없이 분해하여 우리에게 기름진 흙을 제공해왔다.

이런 지렁이의 죽음은 우리 인간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제껏 그래온 것처럼 환경을 짓밟아 인간의 편의를 추구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죽음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시멘트 포장길 위에 널려있는 수많은 지렁이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해왔던 작은 행동들,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수많은 환경관련 이슈들이 이 작은 생명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사람들을 오늘도 여전한 무더위에 잠 못 이루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원인 없이 벌어지는 결과는 없다. 이제는 우리가 생각을 바꾸고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할 때다. 자연과 환경이 나와 상관없는 것이 아닌 내가 속해 있고 내가 스스로 지켜 내야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지렁이가 없으면 흙도 없고 흙이 없다면 인간도 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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