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과일을 먹기 힘든 진짜 이유

2016.07.27 14:44:27

이태근

사단법인흙살림

저농약 인증제도는 2001년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와 함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저농약 재배란 화학농약은 허용기준의 1/2 이하 사용, 화학비료는 권장사용량의 1/2 이내 사용,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는 농사 방식을 말한다. 인증 제도가 시행된 지 16년이 지난 현재 쌀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곡류, 채소류는 저농약을 넘어서 무농약, 유기재배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과수의 경우 지난 2015년 저농약 인증제도가 만료되어 없어질 때까지도 계속 저농약 인증에 머물러 왔다. 저농약 과수 재배농가들이 무농약이나 유기재배로 전환하지 않고 저농약에 머무르다가 끝내 인증을 포기하고 관행 재배로 돌아서거나 농약과 비료 사용이 가능한 GAP인증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의 여름철 고온다습한 기후와 재배기간이 긴 과수의 특성 상 병해와 충해로 인해 과일의 품질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아열대몬순기후지역으로 여름 장마기간이 길고 고온다습하다. 그리고 과수는 재배기간이 길다. 일부 재배 기간이 짧은 과일들(블루베리, 매실 등)은 장마 이전에 수확이 가능하여 무농약, 유기농으로도 충분히 재배가 가능하다. 그러나 장마와 태풍을 견디고 가을에 수확하는 과일들은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병과 해충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여름, 가을이 제철인 복숭아, 자두, 포도, 사과, 배, 단감과 같은 대부분의 과일이 해당된다.

둘째, 국내 소비자의 과일을 고르는 기준이 모순적이다. 많은 소비자들의 기준에 의하면 과일은 무조건 크고 예쁜 모양에 흠집이 없어야 하고 맛이 달면서 농약으로부터 안전하기까지 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과일은 전체 수확물 중에서도 극히 일부이다. 영양적인 면에서나 맛에서 뒤쳐짐이 없는 과일이라도 모양이 예쁘지 않으면 시장에 내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외국에서 유통되는 유기농 사과는 작고 단단하고 못생겼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시중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그 사과를 사먹는다. 작고 단단하고 못생긴 사과일수록 약을 치지 않은 깨끗한 사과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기농 과일은 관행 사과와 배처럼 껍질을 깎아먹을 필요가 없다. 껍질 채 한 입 베어 물어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자라면서 갖은 고난을 겪어내고 얻은 신맛과 단맛의 조화가 바로 유기농 과일의 맛이다.

위와 같은 이유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기농 과일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농사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30년 이상을 농업 현장에서 지켜본 결과 농민 개개인의 유기농 농사 기술은 외국의 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유기농 과일을 쉽게 사먹을 수 없는 진짜 이유는 소비자들의 의식 때문이다. 이제는 소비자의 과일에 대한 선택이 변화되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무조건 크고, 달고, 때깔 좋은 과일을 선호한다면 우리나라 과수의 유기농화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조금 작고 흠집이 있더라도 믿고 먹을 수 있는 과일이라는 인식을 키워야 할 때다. 우선은 친환경 학교 급식 등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껍질 채 과일 먹기 운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일 것이다. 화학농약과 화학비료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습한 더위와 모진 비바람, 병과 벌레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생명력을 느끼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살아 있는 교육이다. 그리고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새콤달콤한 과일 본연의 맛은 푸짐한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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