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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노을이 진다. 도서관에서 나오자마자 그린 듯 밀려오는 꼭두서니 빛 해일. 풀밭에서는 찌르찌르 귀뚜라미가 울고 해거름 번지는 노을이 꿈결처럼 곱다. 날마다 지는 태양이건만 오늘 따라 왜 그렇게 울먹이는지. 하늘도 저녁이면 지는 하루가 아쉬운 듯 불가마 걸어놓고 내일을 지핀다.

 노을은 슬프다. 오늘을 떠나보내는 것은 서러워도 내일을 분만하기 위한 아픔이다. 내일의 태양이 뜨기 위해서는 오늘이 수장되는 아픔을 겪는다.

 오늘은 지워지고 새로운 하루가 자리 잡게 될, 낮도 아닌 밤도 아닌 그 시간에 번져가는 이미지가 새삼스럽게 곱다.

 저기 붉은 하늘은 빛이 빛을 산란하고 잇따라 또 다른 빛의 산란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또한 구슬픈 여운이 손끝으로 전이됐을 테지. 조목조목 짚어가는 4개의 현도 빛깔 다른 슬픔이었기에.

 노을은 파장이 짧은 푸른빛은 흩어지고 파장이 긴 붉은 빛깔만 남은 현상이다. 수줍은 듯 꼭두서니 빛이었다가 보랏빛도 살짝 어렸다. 저녁이면 지평선 가라앉는 슬픔 때문에 더 절절했던 것일까.

 노을만 보면 까닭 모르게 슬퍼지던 때가 있었다. 괜히 눈물이 나고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에 시달렸다. 울어도 눈물 한 방울 내비치지 않는 노을의 슬픔까지 담아서.

 얼마 후 하루가 끝나고 고요해지면 그제야 황망히 돌아섰다. 노을이 지기 전까지는 몰랐다가 급자기 저녁바람에 으스스 떨던 기억이 선하다.

 억새밭 풍경이 새삼 고즈넉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한가을 내내 바람을 채우고는 무거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

 저녁하늘 날아가는 물새들까지 날개를 접고 잠잠하다. 꿈같은 계절의 풍경을 감상하는 기색이되 그보다는 바위 같은 침묵이 가을의 뉘앙스를 닮았다.

 슬픔에 짓눌린 가슴을 살포시 열어 보이던 노을처럼 그리움도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얼마쯤 걸어 청미천 기슭에 이르렀다. 저만치서 노을이 강물을 끓인다. 해거름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노을은, 오늘 하루의 모든 것을 태우고 강물은 다독다독 재운다. 즐거웠든 속상했든 오늘은 영원히 물속에 수장된다. 무한정 깊은 슬픔인데 뒤따라 어둠을 비집고 나오는 내일.

 바람이 지나간다. 해거름 땅 그늘도 저만치 비낀다. 어스름한 저녁 뒤미처 뜨는 사금파리 별. 노을은 서쪽하늘 차오르다가 썰물로 지는 조석간만 현상이었던 걸까. 설핏 기울여 쏟으면 온 하늘이 물들 텐데 빙산의 일각이라 서쪽하늘 언저리만 일부 쏟아졌다.

 연연히 타오르다가도 불시에 스러져버린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저녁 하늘의 환상이다.

 노을이 뜨는 한 힘들어도 참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울먹이는 눈길 때문에 강을 끓이지 않을 노을이 없고 지켜보는 눈동자 때문에 산란을 멈출 수도 없는 그 속내.

 아무튼 노을이 있어 행복하다. 아주 예쁜 하늘도 그렇고 좋아하는 선율을 들은 끝이다.

 환상적인 연주자 때문에 더욱 특별한 날이다. 노을이, 제가 저를 태우는 것은 슬프지만 내일을 위해서 지는 거다. 또 다른 행복이다.

 여명의 일출도 예쁘지만 해거름 낙조도 아름답다. 일부는 태우고 한편에서는 울먹이는데 다음날이면 여전히 떠오른다.

 끝없는 빛의 산란이다. 산울림 메아리가 이중삼중 여운을 남기면서 더욱 환상적으로 퍼져나가듯 끝없는 빛의 산란이 서쪽하늘 어름에 금물결로 흐른다. 내일을 슬어놓는 노을 때문에 참 아름다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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