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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8.29 16:31:33
  • 최종수정2021.08.29 16:31:33
운동량이 부족해질 때는 몸에 굴곡이 없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군살이 붙고 어깨까지 비대해질 때가 있다. 모처럼 작년에 사 두었던 여름옷을 꺼냈다. 1년 새 작아져서 입기가 불편하다. 처음 입을 때는 멀쩡하게 잘 맞았던 옷이었는데 걱정이다. 옷맵시는 물론이고 일단은 건강에 무리가 온다.

친구도 체중이 자꾸 늘어난다고 걱정이다. 애당초 호리호리했던 사람인데 수술을 받으면서 믿기지 않을 만치 몸이 불었다. 허리선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고 배까지 나와서 보는 것도 불편할 지경이다. 그 위에 건강까지 악화된다니 비만을 병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손발이 차가워지는 건 물론 호흡이 가빠지면서 사흘돌이로 병원 출입이라니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굴곡이 없어지는 것은 건강의 적신호를 예고하는 것일까. 살집이 별로 없는데도 체중이 늘 때마다 걱정인 걸 보면 허구한 날 비만에 시달리는 친구는 얼마나 심란할지 상상이 간다.

살다 보면 굴곡이 있게 마련이고 얼마만한 축복인지를 느끼곤 한다. 굴곡이 없어지면서 적신호가 오듯 매일 매일 단조로운 일상에 문제가 생긴다. 좋은 일에 마가 낀다. 좋은 일이 생길 때 조심하라는 뜻도 있지만 물결이 치면서 정화되듯 어려움과 우여곡절 속에서 물갈이가 되는 변화를 의미한다. 하루 이틀 살고 말 거면 단조로운 날도 괜찮으나 몇 십 년 이상 쇠털같이 많은 날들이라 곡절이 필요하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에는 기후의 변화가 없다. 춥든 덥든 똑같은 날씨다. 사막을 봐도 모래바람 아니면 뜨거운 열풍에 시달린다. 이따금 오아시스가 나오기는 하지만 대부분 끝없는 모래사막이다. 남극이나 북극만 봐도 허구한 날 춥다. 보이는 거라곤 끝없는 빙산과 빙하뿐이다. 거대한 눈의 산맥을 보면 사막보다 장엄하기는 해도 터를 잡고 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온대지방의 날씨는 들쭉날쭉이다. 비약해서 말하면 변덕이 심해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무지하게 춥다. 말이 좋아 뚜렷한 사계절이지 태풍과 장마와 겨울의 혹한과 눈보라까지 겹친다. 적응이 안 될 때가 많지만 봄 가을의 아기자기한 날씨를 보면 그럴법하다. 꽃피고 새우는 봄은 얼마나 춥고 지루한 겨울이었느냐의 문제였다. 초가을 짙푸른 하늘과 황금물결도 여름내 휩쓸어 간 태풍 때문이었다. 겨울이 춥지 않으면 따스한 봄이 될 수 없고 여름이 덥지 않고 태풍이 적으면 그 해 가을의 결실은 보잘 것 없다.

겨울 또한 희망찬 봄을 위해 추울 수밖에 없다. 춥고 지루한 겨울 뒤에 맞는 봄과 춥지 않았던 겨울 다음의 봄은 이미지부터 다르다. 단순히 따스한 것뿐이 아닌 겨울의 꿈을 피울 수 있는 생명의 온상이라는 것까지 터득하려면 겨울 중에서도 혹독한 겨울을 나야 가능하다. 바로 그 무더위와 강추위가 우리 삶의 굴곡이 되는 게 아닐까. 매서운 추위를 모르고는 따스한 봄을 실감하지 못하듯 시련의 채찍을 맞아 봐야 삶의 진실이 나온다.

사는 것도 굴곡이 있을 때가 좋았다. 연세 드신 분들이 가끔 사는 게 재미없다고 푸념하는 걸 들을 때가 있다. 자식들 키우랴 그럴법한 일이다. 자식들 다 키우고 난 다음에는 할 일이 없고 그러다 보니 매일 매일 똑같은 날 때문에 무료해진다. 한그루 나무조차도 바람을 맞아야 큰다. 우리 역시 곡절이 많은 삶 속에서 성장을 한다는 그 말이 맞지 않을까.

우리 늘 사는 게 힘들다고 타박이지만 그래서는 굴곡이 없어지면서 병이 찾아오는 것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시련이고 역경이라 해도 단조로운 삶이 되는 걸 막을 수 있다. 고여 있는 물은 썩는다. 냄새가 나고 썩은 다음에 구답을 치르느니 평소 조금씩 치러가는 단련이 수월하다. 우리 몸도 굴곡이 없어지면 그 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매일 보는 하늘도 태풍이 지나가면서 푸르고 맑아졌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잔물결로 찰싹이려나? 내 삶이 조금씩 정화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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