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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가을입니다. 멀리 날개를 펼친 듯 보송보송한 새털구름. 유들유들하게 올라온 풀은 또 얼마나 푸른지 둔덕이 다 풍성하군요. 어딘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을 얼룩말들이 스쳐갑니다. 바야흐로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었거든요. 온통 영글기 시작하는 들녘은 가을 풍경의 백미라 해도 손색이 없고 씻은 듯 푸르러지는 하늘 때문이었을 거예요.

허나 중국 사람들이 흉노에게 시달릴 걱정 때문에 나온 걸 보면 전혀 생소한 말이었지요. 흉노는 북방의 유목민족으로, 초가을 풀이 무성해지면 말은 살이 오르고 흉노족은 그걸 타고 곧장 쳐들어가는데 그 와중에 생긴 숙어랍니다. 여느 때도 두통거리였지만 가을이 되어 하늘이 높아지면 또 일제히 쳐들어오겠구나 라는 탄식이었죠.

가을이면 습관적으로 천고마비를 떠올리던 걸 생각하면 느낌이 묘했지만 당연하지 싶기도 합니다. 명색은 가을이되 늦더위가 계속되는 날씨야말로 아직은 더 익혀야 할 때라는 의미. 엊그제 무더기로 쓰러진 벼 또한, 다 익은 것 같지만 아직은 멀었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폭양에 장마에 시달리다가 모처럼 가을볕에 익어가던 중 태풍을 만났습니다. 일으켜 세운다 해도 수확은 떨어집니다. 고대 중국 사람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겉보기와 다른 세상이 드러나는 겄 같습니다.

가을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뇌었을 천고마비는 마지막 결실을 위해 다시금 몰아치는 태풍의 본체 같은 의미 아닐는지요. 달그락 소리가 나도록 영글고 익으려니 그 때문에도 태풍과 무더위가 수반됩니다. 고대 중국 사람들 또한 툭하면 쳐들어오는 오랑캐 때문에 변방의 수비를 강화하고 우리 너무도 잘 아는 만리장성까지 축성된 거라면 변덕스러운 날씨 또한 해마다 익숙해져야겠다는 느낌입니다.

하기야 그래서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요. 가을이라고 무조건 천고마비가 아니라면 겨울이라고 해도 당연히 춥지만은 않겠죠. 눈 속에서도 꽃망울을 새기는 매화가 있고 이름도 예쁘게 특별히 동매화라고 불렀습니다. 봄 초입에서 벙그는 복수초 역시 미처 녹지 않은 얼음골에서 피었지요. 꽃 피고 새가 울면서 완연한 봄이 되지만 시샘이나 하듯 진눈깨비가 날리고 꽃샘이니 잎샘추위가 계속되는 걸 보면 초가을 날씨에 수반되는 늦더위와 장마 그대로입니다.

그럴 듯한 허울에 깜빡 속을 수 있다는 것은 허울보다 괜찮은 경우도 가끔 있다는 뜻이었지요. 꽃방석에 가시가 있다는 말은, 가시방석에도 꽃이 깃든다는 의미였을 거예요. 획기적인 반전입니다. 풍성하고 넉넉해 보이는데 뜻밖에 걱정이 많다는 초가을 천고마비 메시지야말로 겉보기와는 달리 살만한 구석이 있다는 뜻으로도 비약할 수 있으니, 적용해볼만한 여지가 충분합니다. 눈부신 황금들판 속에도 수많은 천둥과 번개와 먹구름이 도사려 있었습니다. 가을과 함께 모두는 영그느라 풍성하고 더러는 단풍으로 화려했지만 속내는 남모를 수고와 인내의 연속이었던 것처럼.

눈을 드니 다시금 푸르른 하늘. 폭양에 태풍이 극심해도 보란 듯 탐스럽게 영글기 위해 참고 또 참았을 테니 어쩌면 그래서 가을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지나간 태풍으로 더 옹골차게 익었다면 내 삶의 곡절과 어려움도 익힘을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렵니다. 더러는 찌들고 눈물로 얼룩지는 삶이 된다 해도 익힘 때문에 가끔은 무덥고 습습하고 태풍도 지나가는 것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야겠죠. 가을은 분명 천고마비의 계절이었지만 오랜 날 겪어 보니 서늘하지만도 않고 이따금 무더위와 태풍에 시달리기도 했던 것처럼. 가을은 누가 뭐래도 여름을 견딘 자의 몫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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