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 인식

2024.08.06 14:42:46

박홍규

충북여고 교장

더위를 견디는 여전한 친구는 책이다.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도전적인 질문이 제시된다. 노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나 표현 다섯 가지를 나열해 보라는 것이다. 얌전히 질문에 따라 답을 만들어본다. 베카 레비의 책 '나이가 든다는 착각' 이야기다. 나름대로 다섯 개의 단어를 궁리한 다음, 페이지로 눈을 돌리니 이번에는 그 중 긍정적 단어가 몇 개인지 묻는 질문이 이어진다. 아쉽게도 내가 준비한 단어들 중 긍정적인 것은 둘 뿐이다. 내용을 보니 나만 그렇다기보다 많은 사람들의 경향이 그러한 듯해서 조금 위안이 되기는 한다.

시간은 지나간 뒤에 돌아보면 참 빠르게 흘렀다. 문득 지나온 과정을 돌아볼 때마다 새삼 느끼곤 한다. 빠르게 흐른 시간이 층층이 누적된 만큼 이제는 교직에서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막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퇴직 이후를 비중 있게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읽는 책 목록의 한 부분이 그 방향으로 짜여진다. 과감한 제목을 가진 이 책도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퇴직 이후에 대한 생각은 대체로 피상적이되 '여생'이라는 말에 함축된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남은 생애로서의 여생은 본격적인 삶을 살아낸 이후의 여분과도 같은 시간이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퇴직하고 나이가 들어 늙어갈수록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책에서 제시하는 메시지는 단순 명료하다. '긍정적인 연령 인식'의 중요성과 필요성이다. 노화는 생물학적 과정이지만 동시에 사회문화적, 심리적 과정이므로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밑줄을 그은 '노인이라고 다 현명하지는 않지만 노인이 되지 않으면 현명해질 수 없다'는 구절에는 긴 삶의 여정 속에 담긴 통찰과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배려와 사랑의 지혜가 담겨 있기도 하다. 긍정적 연령 인식의 힘이 발휘되는 장면이다. 삶의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긍정의 힘은 나이 듦과 퇴직 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누구에게든 어느 시점에서든 현재는 늘 새로운 시작이다. 퇴직 이전 혹은 이후인지, 나이가 얼마나 들었는지의 문제는 핵심 사항이 되지 않는다. 삶은 나이가 어떠한지에 상관없이 도달해 있는 지금 이 시간, 이 시점에서 언제나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것이며, 앞으로의 시간은 미지의 영역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야 할 새로운 공간이 된다. 게다가 새롭다거나 시작한다라는 말은 일종의 기대감마저 제공하지 않는가. 퇴직 이후의 나날들이 남은 삶으로서의 여생이 아닌, 새롭고도 낯선 시작이라는 생각은 마음속에 뜻밖의 파장을 만들어낸다. 더불어 긍정적 연령 인식에 바탕을 둔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퇴직 이후를 준비하는 기본 프레임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자리한다. 그러한 틀로 구도를 잡은 다음 구체적인 내용들을 만들어 가면 될듯하다. 물론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부터 다시금 궁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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