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4차 산업혁명

2021.05.11 17:58:21

박홍규

충북여자중학교 교감

사회적 현상이라든가 경향을 잘 짚어낸 키워드는 널리 확산된다. 상업성 높은 키워드, 주류 집단의 이해를 효율적으로 홍보하는 키워드는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비율이 높아지며 생존 기간도 길다. 익숙한 언어로 표현된 키워드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간다. '4차 산업혁명'은 이 조건들을 두루 갖춘 키워드인 듯하다.

4차 산업혁명은 빅 데이터, 인공지능, 로봇공학, 초연결성 등 하위 키워드들과 함께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키워드를 열성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교육이다. 미래에의 준비를 강조하는 개념으로써 4차 산업혁명은 교육의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키워드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즉, 정부와 기업의 투자가 집중되는 분야로, 대학과 연구소에서 경쟁하듯 뛰어드는 영역으로써 4차 산업혁명이 일반화되면서, 어느새 학교는 그 분야를 이끌어갈 미래인재 양성의 책임을 지는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실제 살펴보면 4차 산업혁명과 그 그룹에 속한 현상들은 삶의 형식을 바꾸어 놓는, 변화의 속도를 가속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살아가는 것 자체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살아가는 방법만큼은 이 그룹에 속한 변화 작용에 의해 과거의 시각으로 보자면 낯설고 새로운 것들로 대체되는 중이다. 시간과 공간의 활용 방법을 바꾸고 있으며, 바뀌어버린 시공간 활용법은 빠르게 일상이라는 지위를 확보한 뒤, 다시 그것에 기반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라는 현상을 내용과 형식의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아무래도 내용보다는 형식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공지능을 위한 인공지능 혹은 빅데이터를 위한 빅데이터라기보다는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인공지능 혹은 생산과 소비를 효율화하기 위한 분석 자료로서의 빅데이터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다 설득적이다. 삶의 질 또는 행복도의 확대가 내용 요소라고 한다면, 그것을 위한 방법으로서의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기술은 형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사물 인터넷, 로봇공학이나 나노기술 분야에 종사하거나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경우 직업으로서 또는 연구 주제로서 그것 자체가 목적으로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입장을 사회 전반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이 방법과 형식으로서의 성격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교육에서 키워드로 사용할 때에도 내용보다는 형식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할 듯하다. 사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강조되고 있는 융합능력, 협력과 의사소통 능력,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 등의 역량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4차 산업혁명이 아니어도 그 역량들은 교육의 주요 내용이 되기에 충분하며 이미 그렇게 다루어지고 있다. 교육과정 구성을 고민하고, 교육자원을 적확하게 투입하기 위한 노력은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기 위한 별도의 작업이라기보다 교육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목적 지향이며, 삶의 질을 가꾸기 위한 접근인 것이다.

학교교육이 삶의 형식에 치중하는 활동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 무엇무엇을 바꾸고 무엇무엇을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의심없이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 키워드는 학교를 끌고가는 역할이 아닌 필요한 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교육보다 4차 산업혁명을 '활용하는' 교육이 보다 현명하지 않을까. 더구나 이 키워드가 견해와 입장 중의 하나가 아닌 교육 이슈의 선점을 위해 동원된다거나, 학교 교육을 문제 삼기 위해 이용될 경우 주객이 바뀌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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