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음

2022.06.07 15:59:08

박홍규

충북여자중학교 교장

때때로 학생들이나 선생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드라마라든가 연예인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곤 한다. 하지만 평소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가 아니어서 그저 듣기만 할 뿐이고, 누군가 간혹 무엇인가를 묻거나 생각이 어떠냐고 하면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해 허둥대기 일쑤다. 관심이 없으니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아는 내용이 없으니 그에 관한 생각 역시 밖으로 꺼낼 수준이 되지 못한다. 그쪽 분야에 대해서는 생각을 이끌어갈 기준이 없는 셈이다.

생각 없음은 기준 없음과 같은 말이다. 생각이나 기준 갖기는 우연히 혹은 거저 제공되는 공짜 선물이 아니다. 알려고 하지 않거나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면 해당 분야에 합당한 기준을 세울 가능성은 없다. 알아간다는 것은 기준을 세워간다는 뜻이고,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어떤 현상 또는 대상에 대한 정보가 없거나 부족하다면 적절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그에 대하여 판단하거나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현명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억지로 판단하려 할 때 그것은 작위적 한계를 갖게 마련이고, 게다가 그 결정을 실제 현실에 적용하려 고집한다면 불행한 과정이나 결과를 피하기 어려워진다. 어찌 보면 앎과 생각과 기준 설정은 상호보완하는 동일체라고 할 수 있다. 알고 있는 만큼 생각하게 되고, 기준도 그 정도에 맞춰 숙성된다. 그러니 한층 정교한 기준을 세우고자 한다면 더욱 깊이 알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오류의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생각하며 기준을 세워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심 범위를 자기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장면들로만 좁힌다고 해도, 그것들의 종류라든가 양상 또한 다양하고 넓어서 헤아리기조차 수월한 것이 아니다. 시간을 들여 골똘하게 생각을 기울일 대상이나 이슈는 사실 제한적이다. 따라서 앎과 생각과 기준의 문제는 방향성과 선택의 문제가 된다. 관계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현상이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생각하고 기준을 세워갈 것인지는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라든가, 어떤 형태로든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과 사건들에서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래도 범위는 여전히 넓다. 방향과 관계성의 정도를 확인하여 선택하는 과정이 동반된다. 중요하게 여기거나, 가깝고 긴밀한 관계성을 갖는 일일수록 깊고 상세히 알아가고 생각하며 기준을 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게 된다.

한편으로 앎과 기준이 선택의 문제라면 생각 없음을 모두 문제 삼기는 힘들다.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에 적절한 생각이 없어 굳이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기준 없음이 자랑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적어도 자신의 삶과 공동체적 삶에 꼭 필요하거나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

하지만 생각이 필요하고 기준이 필요함에도 그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문제가 된다. 아무리 앎이나 생각이 선택의 문제이며 수용의 문제라고 해도, 의무사항처럼 반드시 선택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또한 적지 않다. 삶이나 관계들을 위태롭게 만드는 현실의 온갖 문제들, 눈앞에 벌어지는 비극이라든가 모순들과 같이 생각을 해야 할 사항에 대하여서는 타당하게 생각하고 합당한 기준을 세워가야 한다. 필요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고, 가능한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부여된 기본적인 책무인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를 향한다. 드라마라든가 연예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그 화제에는 생각 없음을 표방할지라도, 알아야 하며 심도 있는 생각을 통해 기준을 세워야 하는 문제들에는 제대로 시간을 집중하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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