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뜨기

2022.05.10 16:32:46

박홍규

충북여자중학교 교장

잔디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잔디밭에는 누군가의 정성이 그만큼 들어가 있다. 면적이 크면 클수록 할 일도 많아지겠지만, 크기가 작다고 해서 기울여야 할 노력이 비례하여 작아지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삼월부터 시작해서 서리가 내리는 시월 말까지 반복해서 풀을 뽑아야 하고, 주기적으로 깍아 주어야 한다. 때때로 이끼도 제거해야 한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잔디밭이라면 농약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대부분 손을 써서 작업해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풀뽑기 시즌이 시작되었다. 잔디밭에 올라오는 풀의 종류는 참으로 많지만 그 중에서도 질기고 그악스러운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은 쇠뜨기다. 뿌리가 무척 깊어 작정을 하고 땅을 파지 않고서는 '뿌리째 뽑기'는 불가능하다. 한곳에 모여 나는 것도 아니다. 여기저기 불쑥불쑥 돋아나면 그냥 보이는 대로 뜯어내는 방법이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런다고 해도 이 녀석은 줄기가 약해 중간에서 끊어지기 일쑤다. 신기한 일은 끊어진 자리에서 얼마든지 새 줄기가 돋아난다는 것이다. 보이면 뜯고, 또 보이면 뜯어도 기어이 그 자리에 다시 싹을 내민다. 거의 무한반복이다. 얼마쯤 신경을 쓰지 못하면 어느새 무성해진다. 땅 깊숙이 박힌 영양뿌리를 없애지 않는 이상 쇠뜨기를 몰아낼 방법이 없다는 전문가의 설명이 이해가 된다. 결국 쇠뜨기와는 지구력과 인내심의 싸움이다.

다른 풀들은 아무리 무성해도 몇 번 작심을 하고 뽑아내면 대부분 사그라든다. 그렇게 하여 풀을 뽑는 노력의 댓가를 확인하게 해 준다. 이번에 꼼꼼하게 작업을 하면 반복해서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리라는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그럴 땐 풀 뽑는 일이 즐겁다. 즐거움은 두 가지다. 성가신 녀석들을 치워버리는 즐거움과 앞으로 다시 보지 않아도 되리라는 기대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쇠뜨기는 다르다. 단지 뜯어낼 때 잠시의 시원함과 적어도 며칠 동안은 눈에 띄지 않을 것이라는 위안이 남아있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 징그러운 녀석과 만나야 한다. 반복되는 지겨움과 연결되어 있다. 생각을 바꾸기 전까지는 그랬다.

당연하지만 내 기준만 고집할 순 없다. 근육이 딱딱하게 뭉치면 병이 되고 경직된 관계는 쉽사리 충돌하듯 생각 또한 그렇다. 그것을 피하려면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이제 쇠뜨기는 그 자리에서 줄기가 다시 올라올 것을 으레 예상한다. 줄기만 끊어서라도 잠시나마 잔디 마당을 가꾸는 것 자체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뽑아내 정리한 다음 얼마 뒤에 싹을 내밀면 다시 뽑아내고, 또 올라오면 역시 또 뽑아내는 일을 반복하는 일이 최선이라 받아들이고 있다.

살펴보면 쇠뜨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해마다 뽑아내는 풀의 종류가 달라지기는 해도 풀 자체가 수그러들지는 않는다. 날이 풀리면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땅을 쪼아대는 작업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다름이 없다. 지난해 말끔하게 뽑아낸 종류의 풀이 올해에는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 대신 다른 녀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랭이가 세력을 넓히다 주춤해지면 망초가 뒤를 잇는다. 그 다음은 방동사니가 준비하고 있는 식이다. 없어진 듯한 풀들도 한두 해 신경을 쓰지 않고 느슨하게 놓아두면 영락없이 다시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무한반복이다.

호미를 들고 잔디밭에 앉아 무성하게 돋아난 풀을 뽑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지금 하는 일이 그 일을 하게 만든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이고, 그 효력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사실 없다. 잔디밭을 갈아엎지 않는 이상, 잔디밭의 풀들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이상, 어떤 종류의 풀이 되었든 계속 마주하며 뽑아내기 위해 쪼그려 앉을 수밖에 없다. 허리가 뻐근하게 뽑아낸 만큼 시원해진 잔디밭을 바라보며 느끼는 현재의 즐거움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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