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대신 질문

2021.11.04 16:55:24

최유라

청주 청원초 교사

'질문하는 교실 : 정답 대신 질문'은 정답을 가르치는 대신 질문을 던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 반의 교육과정이다. 정답을 가르치는 교실은 그 정답 딱 하나만 배우지만, 질문을 던지면 교실 속 구성원의 수만큼의 정답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운영된다.

친구를 배운다고 생각해 보자. 친구에 관한 정의를 누군가가 내려줄 수 있을까. 사전적 정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친구에 관해 느끼는 것, 정의하는 방식은 다를 텐데. 누군가는 늘 함께 하는 이를, 누군가는 오래도록 안 보다가 만나도 반가운 이를 친구라고 정의내린다. 초등학생에게 다가오는 친구의 의미는 교사가 느끼는 친구의 의미가 같을까. 그래서 친구의 정의를 내리기 전에 먼저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희가 생각하는 친구는 어떤 사람이야?" 초등학생의 인지 발달 단계상 추상적인 정의는 힘들기에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모습이 담긴 책을 찾아오게 한다. 추상적으로 '친구란 이렇다'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이런 관계가 제가 생각하는 친구와 가장 많이 닮아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저마다 가져온 책 앞에는 자신의 이름을 메모지에 써서 붙이고 일정 기간 교실에 전시한다. 아이들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친구가 골라온 책을 읽는다. 읽으며 '어떤 부분을 생각하며 이 책을 고른걸까?', '이 친구가 좋아하는 친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충분히 시간이 지난 후 각자 어떤 부분, 혹은 어떤 이유로 이 책을 골랐는지 나누며 자신의 생각이 맞았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마음에 새긴다, 내가 좋아하는 이 친구와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그런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잔소리 없이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교실 속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아이들에게 내가 고른 책을 보여준다. 어떤 해에는 「물고기 아이, 실비아 베키니」를 통해 '내 마음을 궁금해 하는 사람'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해에는 「똑, 딱, 에스텔 비용-스파뇰」을 활용해 '따로 또 같이'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한다. 교사의 입으로 '친구란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금세 잊어버리곤 하지만 이렇게 은근한 손길로 내민 책 한 권에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골랐을까 고민하고 설레며 책을 꼭꼭 씹어 읽으니 더 오래 기억된다.

「나는 개다, 백희나」를 읽고 '힘들 때 조용히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했던 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는데, 아이들은 선생님의 오후를 돌아가며 조용히 지켜주었다. 왜 오후에 남냐고 물었더니, 속상한 선생님 옆에 동동이가 되어 함께 있어 주려 그랬다는 말에, 끌어안고 한참 울었던 기억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탄 빵, 이나래」이다. 아침마다 가져온 토스트를 나누어 먹는 동물들 이야기. 친구란 함께 나누어 먹는 사람이라는 뜻일까 생각했는데. 책 한 쪽에 그려진 '매번 늦는, 조금 느린 거북이를 늘 기다려 주고 걱정해 주고 바라봐 주는 토끼의 시선'을 친구라고 생각했다는 아이의 말에 마음이 저릿했다. 자신이 느리고 부족한 순간에도 자신을 기다려 주고 바라봐 달라는 아이의 간절한 바람 같아서.

'친구란 무엇이다' 대신 '친구란 무엇일까?'라는 질문 덕에 아이들 수만큼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질문을 던져 보자. 먼저 들어주고 나의 이야기도 들려 주자. 나의 세계가 교실 속 수 많은 세계가 만나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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