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육과정은 나선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교육 내용의 반복과 심화가 이루어진다. 개인적으로 이를 가장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 국어 교과, 그중에서도 시 수업이다. 시를 다양한 방법으로 읽거나 감각적인 표현을 찾고, 창작하고 감상하는 것까지 1~6학년에서 목표를 달리하여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러다 보니 배우는 아이들 처지에서는 지겨울 법도 하다. 학창 시절의 나 또한 그랬고 어른이 되고서야 시의 아름다움을 느꼈던 터라 우리 아이들이 시를 통해 위로받고 삶이 풍요로울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을 담아 준비한 두 권의 그림책 <꼬마 시인의 하루, 북극곰>과 <나는 여덟 살, 학교에 갑니다, 주니어 김영사>. 어김없이 등장한 시 수업에 기대감이 없다는 6학년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펼쳤다.
<나는 여덟 살, 학교에 갑니다>는 '전지적 여덟 살 어린이 시점'에서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동시와 색연필 그림으로 담아낸 그림책이다. 엄마 아빠는 아침마다 회사를 가는데 '선생님은 왜 회사에 안 가요?'라고 묻는 말에 공감하고, 좋아하는 아이 옆에 서고 싶어 신발을 천천히 신는다는 마음에 따스해진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1학년을 추억하기도 하고, 귀엽다며 엄마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시처럼 여러분이 겪는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어요." 내가 겪는 모든 일상이 시가 되고, 그 시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과 감동, 위로를 줄 수 있음을 충분히 느끼도록 했다. 이제 우리는 시를 창작할 준비가 되었다.
본격적인 시를 쓰기 위해 그림책 <꼬마 시인의 하루>를 읽어준다. "산책 다녀올게요."라는 주인공의 말에 "숙제는 다 하고 가는 거야? 예습 복습은? 방 청소는?"이라는 어른의 잔소리가 날아든다. 첫 장부터 아이들의 공감이 쏟아졌다. 어른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산책에 나선 주인공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걷는다. 아름다운 풍경에 시를 쓰려고 하면 배고픔이 방해를 하고, 맛있는 간식을 먹으려 하는 찰나에 등장한 잔소리는 어쩐지 기분을 망쳐버린 듯하다. 주인공은 하루 동안 겪은 모든 일을 모아 <오늘의 시>를 쓴다. 주인공의 마음에 잔뜩 몰입한 아이들에게 묻는다.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요?" 주인공처럼 꽤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장난처럼 던지기도 한다. 아이들의 말을 모두 모아 적절히 배열하니 그림책 주인공의 것만큼 멋진 <오늘의 시>가 탄생한다. '나는 미래의 행복한 삶을 위해 산다 / 그렇다면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나? / 인생은 멈춤 버튼과 건너뛰기 버튼이 없는 10분짜리 동영상이다 / 다음, 나중, 미래, 그러다 동영상이 끝날지도 모른다 / 인생이란 하늘이 준 기회다 / 나는 많은 음식을 먹으려고 산다 / 교촌이냐 BHC냐가 지금 나에게는 중요하다 / 내가 이상한 걸까? 세상이 이상한 걸까?'(오늘의 시, 청원초 6학년 6반). 6학년 1학기 시 수업의 성취 기준은 '비유적 표현의 특성과 효과를 살려 생각과 느낌을 다양하게 표현한다'이다. 충분히 성취 기준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림책을 덮으며 덧붙이는 질문 하나 더. "어른의 잔소리는 주인공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요?" 잔소리 덕에 멋진 시가 탄생했으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삶은 항상 좋은 일로만 가득하지 않고, 또 좋은 일이 항상 좋은 일로, 나쁜 일이 항상 나쁜 일로 끝나지도 않더라고요. 지금 당장은 힘든 상황 속에 있을지라도 그것이 언제 나를 멋진 상황으로 끌고 갈지 모르는 일이랍니다. 그러니 오늘 일어나는 모든 일을 찬찬히 관찰하고 그것을 나에게 좋은 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하루이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그 말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일어나는 나쁜 일이 언제까지나 나쁜 일은 아니기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시처럼 아름답게 삶 속에 잘 녹아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