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의 위대함

2020.09.27 15:02:22

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이름이 붙여지고 이를 호명하는, 호명에 응답할 수 있는 의식하는 자아는 존재할 수 있는가? 완벽한 이름 붙이기와 그 이름이 나타내는 순수한 정체성이나 본질, 속성은 존재할 수 없기에, 결국 의식하는 자아는 이름 붙이기가 실패하는 잉여공간 경계 틈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SNS 공간에서 오가는 수많은 문자 메시지와 게시된 글 중에서 순수하고 괜찮은 글 한 편이 눈에 들어와 수필에 맞게 수정하여 유명 여류 수필가에게 확인차 문자를 보냈더니 곧바로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보낸 문자 메시지를 상대방이 받았는지, 열어봤는지 언제나 확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에는 즉시 확인되었다. 소통에 대한 분열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새롭게 의식하는 모습, 자아가 탄생했다는 너그러운 인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인정하는 모습을 서두르지 말아야 하지만 또한 서두를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름을 불러내는 방식이 우연이 아닌 방식으로 우연하게 만들어지는 영역, 즉 잉여 된 영역을 살펴 찾아내는 것이 진정으로 새롭게 의식하는 대상과 자아에 대한 모습이고, 내일을 향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있는 영역일 것이다.

이와 같이 이름을 불러내는 호명이 언뜻 연속되는 시간을 의식하면서 자아를 해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한 올바른 호명과 말이 안 되는 개념으로 틈을 만드는, 분열되지 않는, 상호작용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독특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꽃으로 숨어 지내는 날들은 아름다웠다/ 종속과목강문계를 비롯한 학명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꽃이면 족하였다/ 꽃이 아닌 삶은 꿈꿔 본 적도 없다/ 뿌리의 기원에 대한 모든 수다는 알리바이 없는 상상에 불과했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 햇볕을 쪼였고/ 정말로 피곤할 땐 입으로만 하였다/ 꽃밭에 게양된 국기가 투명하다는 것을 국기만 몰랐다 태양 속으로 잡혀가지 않아도 좋았다

- 황성희, 『앨리스네 집』, 「꽃의 독백」 부문

위의 시는 의식하는 자아를 불러내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심리적 공백과 그 경계에 나타난 의식하는 자아에 대한 가능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꽃으로 숨어 지내는 날들은 아름다웠다"고 그냥 그렇게 숨어 있는 것이 편하다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모든 의식하는 자아는 '뿌리의 기원'으로, 알아서 깨달아지는 것에 따라 의식에 나타나는 외계 대상이 유도하는 상(像)에 의해 지배된다. 이에 의한 이데올로기 지배 방식에 의해 자아가 탄생하듯 그냥 나타난 모습을 안고 갈 수 있다면 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는 현실이 지배하는 경계 틈에 존재한다. 따라서 '꽃밭에 게양된 국기가 투명하다는 것을 국기만 몰랐다'라는 말은 의미성을 가진다. 경계 틈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타나는 것은 무엇보다 '종속과목강문계'로 인식하는 외계 대상, 현실에 그대로 노출되어 보여지는 자아 모습에 대한 계열화된 지배원리에서 벗어난 자아 탄생을 인정했을 때 가능하다.

이 지배원리가 '알리바이 없는 상상에 불과' 하다는 것일 수 있겠지만, '학명'이라 이름 붙이고 이름을 불러주어 이미 상황이 종료된 이름 대신 그 잉여 자리에서 단지 '꽃으로 숨어 지내는 날들'로 새로운 주체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으나 끝내 용기 있는 발걸음을 만들지 못했다.

자신에 대한 존재의 위대함이라는 개념을 알아가는 것은 단순한 주체의 드러남, 정체성의 드러남을 넘어선 또 다른 자아 탄생이다. '학명'과 '뿌리의 기원'으로 이름 붙여지지 않는 잉여 공간에 있는 틈새에 대한 탐색과 이를 통한 새로운 의식하는 자아 형성 가능성을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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