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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대상과 친밀할 때가 있고, 때론 대상이 나를 가혹하게 대할 때가 있다. 마음에 탐탁지 않아 관심 없는 대상이 있는가 하면, 열정을 가지고 대상을 사랑할 때가 있다. 이 모두는 하루를 살아내면서 겪어야 할 일상이다.

시, 음악, 사진, 드론촬영을 공부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주변 사물들은 끊임없이 이미지화하여 내면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들은 익숙한 모습으로 때론 낯선 모습으로 내면에 쌓여 가면서 지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층을 만들면서 움직이는 마음 상태 또는 정서적인 상태를 지속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은 살아있다는 기적에 답함이다.

햇살 좋은 지난 6월 동해안 자전거 라이딩 중 묵호 등대 문화공간에 올라 하얀 등대를 보면서 등대처럼 젊고 푸른, 젊은 영혼이 가지고 있는 싱그러운 신선함을 그려봤다.

소동파가 세월을 "마치 구렁으로 들어가는 뱀과 같아 미처 잡을 수 없다" 했듯 (有似赴壑蛇유사부학사) 소년이 가지고 있는 동심은 사라졌고, 청년이었던 청춘은 세월에 빼앗겨 어느덧 하얀 눈이 많이 내린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라이딩 내내 너울성 파도로 동해바다는 일렁거렸다. 해가 떨어지는 모습, 높은 파도, 어선이 떠 있는 바다, 수평선에 걸린 비단 같은 다채로운 빛깔, 비가 내리는 밤바다 등은 새로운 무의식에 대한 모험을, 영혼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모험을 완성 시켜 나가도록 했다.

바다는 내 삶에 있어 동경의 대상이었다. 가슴속에 들어있는 바다는 어느 날은 잠잠하고, 어느 날은 거세게 출렁이며, 나를 흔들었다.

정동진 해변을 거닐면서 잠잠함, 기쁨, 흐린 날 찾아오는 흔들림, 흘러들어 왔다 흔적없이 사라지는 바람, 거센 파도와 노함, 안개 낀 바다의 모호함, 갑자기 쏟아지는 비와 탄식, 도로를 넘어오는 파도, 수평선에 밀려왔다 밀려가는 원초적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모과나무에 호박이 열렸다/길 잘못 든 호박덩굴이 키 큰 모과나무를 타고 올랐다//까칠까칠한 호박덩굴이 감아 올라와도/모과나무는 둥그런 호박 한 덩이 제 자식인 듯 업고 섰다//미안한 듯 호박은 그것도 꽃이라고 호박꽃 피워 등처럼 내걸었다/모과나무 그늘이 모처럼 환하다//가시나무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칡덤불이 아니어서 얼마나 고마운가 하고/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두런두런 들려오는데//기름한 모과 열매가 호박 흉내를 내는지 모과는 모가 닳아서 모과에 모가 없다//호박엔 모과향도 스며있겠다//나를 업었던 이내가 업었던 이를 떠올려보는 저물녘

- 복효근, 「업다」, 전문

"둥그런 호박 한 덩이 제 자식인 듯 업고 섰다" 이것은 조용하고 편안함을 지키고 너그럽게 감쌀 줄 아는 마음일 것이다.

"호박엔 모과향도 스며있겠다"와 같은 깊고 그윽함,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게 깊고 간절함 같은 마음들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어여쁘고, 아름답고, 숭고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한 여인을 보면서 "나를 업었던 이/내가 업었던 이를 떠올려보는 저물녘"을 정동진에서 보냈다.

내 영혼을 가꾸는 일을 포기하면 안 되겠다고,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보면서 가슴에 새겼다. 덧없는 구름처럼 흐르는 세월,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아진 시간을 보면서, 이젠 홀로 서 있지 않고 둘이 같은 방향을 보기로 했다.

동해 바다와 같은 젊은 신선함을 마음에 들여, 신선함으로 살아내고, 마음 깊은 곳에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나를 우리를 흐르게 하기로 했다.

바다에 대한 지층을 만들면서, 베르나르가 『죽음』에서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기 바란다", "육체라는 수단을 빌려 영혼을 발전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여야 한다" 했듯 가꾸어야 할 영혼에 대한 모습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여인과 함께 길을 가기로 했고, 같이 있음에 고맙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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