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조건

2017.07.31 13:33:28

유제완

충북문인협회 회장

일요일 아침 방송에서 미소를 가득 담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의 연예인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나운서가 인생관을 묻자 그는 서슴없이 대답한다. 나는 삶의 원칙을 갖고 실천해나가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늘 그 원칙을 핵심 가치라 생각하고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나와 같이 TV를 보던 아내가 얼굴색을 붉히며 말했다. 저 사람 어쩜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요. 저런 사람이 어떻게 다시 TV에 출연해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워요. 그 연예인은 얼마 전 모종의 스캔들이 있었고 그 파장으로 가정 파탄을 가져왔다. 저런 사람이 연예인으로 다시 연기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흥분하는 아내의 표정이 과하다 싶어 가라앉힐 생각으로 인상도 좋고 능력도 있잖아 라고 말했다. 그 말이 아내의 분노에 더 불을 붙인 모양이다. 그 능력 있고 인상이 좋다는 사실만으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능력이 있다고 해서 과거를 용인하는 건 문제다.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저런 사람은 영원히 퇴출돼야 마땅하다며 열을 올렸다. 평소 조용하고 이해심도 많은 아내가 흥분을 하면서 열변을 토하니 휴일 아침 난 당황해서 어떤 대답을 내놔야 될지 막막했다. 더구나 방학이 돼서 다니러 온 손자 손녀들도 험악해진 분위기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끝내야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성숙해지고 사람다운 참된 사람으로 거듭나지, 그렇기 때문에 용서와 화해가 필요한 것 아닐까. 이젠 이해하고 받아들여 우리 일도 아니잖아".

이쯤이면 끝이 나는 줄 알았다. 한데 아내의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그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이건 어디까지나 도덕에 관한 문제이지 삶에 철학적 차원의 애기가 아니에요. 더 얘기하다 보면 과거 내 젊은 시절의 여성편력으로 주제가 바뀌고 궁지에 몰릴 것 같아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끝내 아내와 나는 화해로운 결말에 이르지 못했다. 별거 아니라고 아내를 설득하려 했던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 여정에서 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위태로운 순간순간들을 넘기며 아슬아슬하게 삶을 이어간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의 내면을 알고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힌 사람이라도 그 사람 나름의 고민이 있을 수가 있다. 무조건 나와 다르다고 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하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문제가 있다. 그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혹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 내면은 고통과 번뇌가 그를 괴롭히게 될 것이다. 내가 뿌리는 모든 씨앗은 모두 나에게서 나온다. 모든 종교가 천국과 지옥을 설정하고 올바른 길을 인도하려는 것도 그 인과의 법칙 때문이다. 나와 아내의 휴일 아침을 망치게 한 그도 남에겐 성공한 인생으로 비춰 질지 모르지만 내면의 고통은 평범한 우리네 삶보다 심각할 수 있다. 그의 기억 속에 반추되는 지난 일을 별거 아니라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오버랩되어 그를 괴롭힐 것이다.

조선시대 남명(南明) 조식(曹植) 선생은 늘 허리춤에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차고 다녔다고한다. 무당처럼 허리에 방울을 차고 다니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습게 보였겠지만 남명선생은 방울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자신을 삼가고 절제하는 생활을 했다.

나도 이제 나에게 방울 소리를 들려주며 나 스스로를 깨우쳐 나갈 연륜이 되었다. 마음속에 방울소리를 들으며 안으로 밝은 마음으로 채워 나가고 밖으로 중심을 잡아 부박한 세태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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