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으로 살자

2018.01.29 14:28:01

유제완

충북문인협회 회장

나는 가끔 골동품 경매장에 간다. 꼭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손때 묻은 생활용품을 보면서 살아온 흔적을 새롭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모아온 골동품은 30여점 정도 된다. 대부분은 향로 촛대 등 제기가 대부분이다. 그림 서적은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구입이 망설여진다. 그런데 엊그제 어린 시절이 생각나 만화책을 구입했다. 주호민씨가 그린 '신과 함께' 이승편이었다. 철거예정지역으로 지정된 도시빈민촌 이야기다. 낡아빠진 오래된 오락실을 운영하며 혼자 살던 장학봉 노인이 사망한 지 일주일만에 이웃에 의해 발견됐는데 노인이 죽기 전 저승사자와 나눈 이야이가 슬픈 여운을 남긴다.

저승사자가 나타났을 때 장학봉 노인은 무릎에 담요를 덮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KBS1 TV의 6시 내 고향 프로였던 것 같다. 시골노인들이 시장에 다녀오면서 나누는 구수한 입담이 흘러나왔다. '저승사자님 이것만 보고 가게 해줘요. 나의 유일한 낙이요' 저승사자가 물었다. '내가 무섭지 않으세요·' 장학봉 할아버지 대답이 요즘 세태를 잘 나타낸다. '죽는게 무섭지는 않지만 다 썩어문드러져 있을까봐 얼마나 치우기 싫겠어. 그게 무서워요' 생전에 자신을 돌봐주지 않았던 가족들이지만 그들을 원망하기는커녕 뒤치다꺼리를 해야 할 이들의 처지를 생각하는 사람의 심정이다. 정말 인간다운 따뜻한 마음이다.

이윽고 저승사자가 '장학봉 장학봉 장학봉' 세 번 부르고 육신에서 혼이 일어나 저승길을 채비한다. 이때 장학봉 할아버지가 소리친다. '아참 텔레비전 좀 꺼주시오. 전기세 많이 나와' 사자가 말한다. '이젠 그런 걱정 안하셔도 돼요. 모든 걱정 내려놓으시고 편안하게 가십시다' 아마 장학봉 노인은 보일러 난방도 못하고 겨우내 전기장판으로 언 몸을 녹였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전기세가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 있겠나. 아끼고 아끼고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그가 의지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건 텔레비전뿐이었다.

나이가 많아지면 늙고 하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의 삶은 모래시계와 비유된다. 위에 있는 모래가 밑으로 떨어지듯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줄어든다. 인간의 삶의 시간은 흘러 간다기 보다는 없어진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어렸을 때는 세월이 천천히 가는 게 지루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점점 적어진다는 걸 느끼는 순간부터 세월빠름을 한탄한다. 어렸을 때는 앞으로 가는 시계를 늙어가면서는 뒤로 가는 시계를 원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세상이치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죽는다.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나의 죽음을 알듯이 노인을 보면서 나의 늙음을 깨닫는다.

얼마 전 중앙공원에 갔다가 나의 노년에 대해 생각해 봤다. 많은 노인들이 군데군데 모여 윷놀이도 하고 담소도 나누는데 대부분 남자노인들이다. 이 많은 노인들이 밤이면 어디로 가나. 돌아갈 곳은 있나. 돌아가봤자 이곳 공원만도 못한 건 아닐까. 통계로 보면 할머니가 훨씬 더 많은데 왜 할머니들은 없고 할아버지들만 보일까.

할머니는 아들이나 딸집에서 집안일을 거들고 살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쓸모없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게 요즘 세태다. 불쌍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로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노인은 점점 무용지물이 되고 사회가 점점 노령화되면서 노인문제는 심각하게 대두된다.

어차피 삶은 고달픈 것이다.

열정, 창조, 희망 죽는 날까지 가슴에 안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진짜 증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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