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마음으로

2018.06.04 14:32:12

유제완

충북문인협회 회장

절간 마당을 가득 채운 연등행렬은 마을길까지 이어진다. 밤길을 아름답게 수놓은 연등은 위대한 성인탄생을 경축하는 정성들이 모인 것이다. 이 계절 하늘엔 별이 빛나고 숲길엔 등불이 환하게 비치고 아름다운 향기가 온누리에 퍼져나가게 된다.

다행히 우암산 기슭에 거처를 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자연이 연출하는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끽할 수 있고 자연 속의 모든 생명들과 함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난 내가 살아있음을 진심으로 감사한다. 번뇌를 주체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마음에 아름다운 꽃을 심고 가꿔 나간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내가 살아가면서 앞으로 몇 번이나 이렇게 곱고 맑은 마음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삶 속에서 사는 것에 얽매여 갇혀 버린다면 마음속에 고운 꽃을 피워낼 수 없다. 마음에 집착을 버리고 여유를 얻은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어느 날 한 중생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하루를 보람 있게 보내려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조주선사는 답했다. 그대는 '하루 24시간 부림을 받지만 나는 부리고 있다네' 그대는 어떤 시간을 말하는가? 집착하면 시간의 부림을 받지만 집착을 버리면 시간을 부리고 살 수 있다네. 쫓기며 사는 사람은 마음에 흐린 구름만 더 얹을 뿐이다. 구름 가득한 마음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집착에 사로잡히면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마음이란 실로 변화무쌍하고 요사스러워 나 같은 중생이 이를 억제하고 다스리기란 쉽지 않다. 지혜로운 사람만이 마음을 다스려 바르게 할 수 있다. 부처님 말씀이다. '수시로 구름 끼고 천둥치는 마음에서 어떻게 맑고 고운 마음을 만날 수 있겠는가. 집착하며 사는 것은 기와를 갈아 거울을 만들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나는 길을 걸을 때 목적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걷고 있는 한 걸음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먼 목적지가 주는 압박감을 떨쳐버릴 수가 있다. 이렇듯 과정이 전부가 되는 삶은 우리를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부처님은 우리 생명의 본래 모습을 구현하려고 했다. 그와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건 집착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자연의 섭리를 깨달은 부처님은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만 본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심고 가꿔 아름답게 피워내야 할 마음의 꽃까지 본 것이다.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분노하고 억울해한 것 같지만 실상은 나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분노를 표현해 왔음을 알게 된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편안하게 인정하며 사는 것, 그게 진정 잘 사는 법이란 걸 요즘에야 어렴풋이 터득해 나간다. 돌아보건대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탓한 일이 없었다.

이제 나는 나 자신과도 불화하지 않는다. 불화할 현실적 근거를 모두 잊고 마음속에서 샘솟는 긍정과 자아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마음에서 우러난 맑은 영감을 글로 표현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니 매사가 보람이고 기쁨이다. 망상을 허무니 욕망에 시달릴 일이 없고 마음이 편안하니 초조하고 불안할 일이 없다. 하루하루 매순간 사는 일이 창조이고 창작이니 만나는 사람과 대화도 금쪽같다.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앞세우니 긍정의 에너지가 넘쳐난다.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이 새로운 봄 나는 너의 풍경이고 너는 나의 풍경이다. 새롭게 여는 일상 속에서 가치 있는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나간다. 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 거치는 과정이니까 한 가지 한 가지 주어진 일들은 꿈의 실현을 위한 디딤돌이다. 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한 나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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