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소화 18년) 3월 15일 청산초등학교 28회 운동회 모습.
개교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옥천 청산초등학교 전경.
2015년 2월 청산초등학교의 100회 졸업식이 열리고 있다.
찌든 가난으로 참으로 어려웠던 학창 시절이었다
6.25전쟁으로 학교가 전소돼 마을회관과 천주교에서 수업
안철호(76·사진·전 충북도의회 의원) 청산초등학교 동문회장은 "해방은 되었지만 찌든 가난으로 어수선하던 1947년 청산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는데, 새삼 힘들게 다녔던 생각이 난다"며 당시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에 잠시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는 "그래도 지금보다 그 때가 학생 수가 많았어요. 4학년 되던 해 6.25 한국전쟁이 났는데 시골이어서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채 피난을 가야한다고 해서 다들 소달구지에 짐을 대충 싣고 무작정 피난을 떠나긴 했습니다.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가는데도 부모님이 옆에 계셔서인지 그리 무섭지 않았다"며 "그게 피난인지 소풍인지 구별이 못했으니 참 철없던 시절이었지요"라고 했다.
또 그는 "그해 11월 청산에 오니 학교가 폭격을 당해 반 밖에 안 남았습니다. 12월에 인근 마을회관과 천주교에서 다시 수업을 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발전된 모습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청산초가 자랑스럽다"며 "지난 100회 졸업식에서 머리가 허연 동문들이 졸업장을 받는 모습은 정말 감개무량 했다"고 당시를 회고 했다.
안씨는 "4학년 되던 해 6.25가 일어나 학교가 불에 타 전소되어 옮겨 다니면서 어렵게 공부하면서 청산초등학교를 졸업했다"며 "지금도 변치 않는 좌우명은 '언제 어디서나 선생님이 일등'이라는 굳은 신념을 갖고 항상 생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옛날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고, 88올림픽과 월드컵을 성대하게 치르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국가가 경제위기에 처한 그리이스를 보아도 우리나라가 IMF를 얼마나 슬기롭게 넘겼습니까. 우리국민은 무엇보다 단결심이 강하고 정이 많은 민족이어서 그 힘이 오늘날 세계 10대 강대국 안에 들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요즘은 학교에서 급식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모두들 참 가난했습니다. 밥을 굶고 오는 친구도 참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친구들에게 구호품인 우유가루로 끓인 죽과 단단한 빵을 주었지요. 요즘은 밥을 굶고 오는 학생도 없고, 학교에서 무료로 점심을 주는데 우리가 학교 다닐 땐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피력했다.
영원한 청산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안씨는 "충북대 약대를 나와 청산에서 약국을 경영 했는데 당시 청산에는 병원이 없어 아픈 주민들이 찾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골 외진 동네까지 왕진을 다녔던 생각이 난다"고 했다.
지난세월을 돌이켜보면 일장춘몽이었다는 안씨는 청산의 살림살이를 꼼꼼히 챙기는 지역의 일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옥천 / 손근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