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음성 수봉공립학교를 다녔던 정인악 위원장은 세계2차대전이 발발한 지 얼마되지 않은데다 왜정때여서 군용 비행기 기름으로 쓰이는 소나무 송진을 짜 내는 일을 매일같이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회고했다.
이때는 10살도 채 되지 않은 저학년이였는데도 군사훈련을 시켰고, 교사도 군복을 입고 있고 수업을 했을 정도였다고 당시 학창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이런 시기가 계속되다 4학년때 해방이 됐다고 전했다.
1945년 해방이 된 해 음성 수봉공립학교는 한 학년에 3개 반이 있었고, 남자 2반, 여자 1반으로 나눠져 한 학년이 모두 200여명이었다.
정 위원장은 알려지지 않은 수봉초 강당에 대한 비하인드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정 위원장이 학교를 다닐때도 강당이 있었다. 음성지역 유지였던 유중환과 박해일이 "왜정치하에선 교육을 강화해 민족혼을 길러야 한다"며 자신들의 전답 100마지기를 팔아서 목조 강당을 지었다고 한다. 이때 유중환 5천엔, 박해일 5천엔, 교비 1천엔 등 모두 6천엔을 들여 목조 강당을 신축하게 됐다.
이 강당은 50여년 동안 개보수 공사를 수차례 걸쳐 유지해 오다 1994년 그 수명을 다해 허물게 됐다. 이때 정인악 위원장이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었고 당시 민태구 국회의원이 친구였던 터라 강당 신축을 건의했다고 한다.
민 의원은 당시 김숙희 교육부장관을 지역에 초청해 식사자리를 마련하게 됐고, 이 자리에서 "음성에서 유서 깊은 강당이 허물어지게 됐다"며 "강당을 새로 지을수 있도록 교부금을 내려보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김 장관은 "고향 초등학교에 강당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국회의원은 처음봤다"며 흔쾌히 7천만원을 보내줘 전국 최초로 국비로 강당을 짓게 됐다고 한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전국의 학교 강당을 국비 지원을 받아 짓게 됐다고 정 위원장은 전했다.
정 위원장은 "1995년 12월1일 강당 신축 준공을 기념해 비문을 세웠는데 이 비문에 민태구의 이름 석자가 새겨지지 않아 지금까지도 아쉬운 마음"이라며, "당시 선거법에 저촉된다고 하여 학교측의 반대로 새겨 넣지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후학들이 민태구라는 이름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