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날 가슴이 쩌릿했어."
올해로 개교 109년을 맞은 청주 주성초등학교. 민병구(79) 주성박물관장은 1945년 광복 당시 주성초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광복 이틀 뒤인 1945년 8월17일 광복 소식을 들은 민 관장은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대한민국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민 관장은 "어른들이 광복했다는 말에 어려서 잘은 몰랐지만 가슴에서 뭔가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등교하기 전 항상 묵념을 했다. 1940년대 민족말살정책을 펼치는 일본이 신사참배 등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묵념을 하면서 일본천황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는 묵념을 했다.
당시 일본은 '교육에 관한 칙어'를 기초로 '조선교육령'을 제정, 우리 민족의 민족의식을 빼앗고 문화를 말살해 일본에 절대복종하고 순종하도록 만들려고 했다.
민 관장은 "학교 정문 앞에 교육칙어봉향소가 있어 등교 때 항상 묵념을 하게 했다"며 "한마디로 일본인이 되겠다고 맹세를 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주성초 정문 앞에는 교서천이 흘렀고 육영교라 불리던 다리가 있었다.
주성초 주변은 청주역사 등 주요 기관이 많아 일본인이 거주하는 관사가 주를 이뤘다.
그는 "광복하고 6학년 선배들이 일본인 관사에 가서 일본 아녀자들한테 큰소리를 쳤다"며 "나중에 선배들한테 물어보니 당시 일본인 교사들이 우리말을 쓰는 학생들을 찾아내 혼을 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부끄럽지만 일제강점기 때 영정학교(현 주성초)가 친일교육에 앞장섰다"며 "일본인 교사들이 지독하고 철저하게 친일교육을 실시했다"고 회고했다.
주성초 내에 있는 주성교육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시절 준공된 건물로 강당으로 사용됐었다.
지난 2001년부터 이 건물은 주성초 동문들이 기증한 물건 등으로 학교의 1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민씨는 "이 건물(주성교육박물관)은 당시 학부형들과 지역 유지들이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해주기 위해 직접 모금해 1923년 준공했다"며 "일본인들에 의해 지어졌으나 우리 민족의 의지로 지은 건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인들이 강당이 목조 건물이라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을 빌미로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며 "동문들이 지금껏 지켜온 건물로 우리 민족의 애국과 우국정신이 담겨있는 상징성 있는 건축물"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