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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9.02 14:17:48
  • 최종수정2014.09.02 14:17:33

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그 옛날 중앙초등학교 주변이 복개되기 전 하천이 있었다. 어느 날, 종례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다 보니 먼저 하교하던 아이들이 뭔가를 향해 종주먹질을 해대며 아우성을 쳤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속에 웬 젊은 여자가 주저앉아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들이 그냥 지나칠 리 있겠는가· 요즘처럼 학원 갈 시간에 쫓기기를 하나, 컴퓨터가 있어 얼른 집으로 가서 게임을 즐길 것도 아니니 급할 게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어떤 녀석은 '미친 년!, 미친 년!' 하며 나이는 비록 어려도 정신은 말짱하다는 우월적 지위를 맘껏 누리며 아이들 앞에서 용기를 자랑했다. 또 어떤 녀석은 작은 돌멩이를 주워와 위협사격을 하며 잔인함을 뽐내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녀석은, 미친년은 빤스를 입지 않는다고, 확인시켜 주겠노라며 긴 장대를 들고 나타나 물속에서 부풀어 오른 치마를 걷어 올리느라 끙끙대기도 했다.

그러다 선생님이 달려오셔서 아이들의 귀가를 독촉했고, 물속의 불쌍한 인어공주가 도로 위로 나오자 아이들은 또 와와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당산 밑 길가에 시원하고 달콤한, 물이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 있었다. 몇 그루 나무가 그늘까지 만들어주어 마치 오아시스를 연상케 했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물 한 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다리를 쉬는 주막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언젠가부터 한 여인이 점령해버렸다. 확인되지 않은 풍문에 의하면 어느 유명한 요정의 마담이었는데 정신이 돌아버렸다는 것이다.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고 그로테스크하게 각색된 이야기가 진실인 양 나돌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녀는 그저 조용히 그늘에 앉아 검고 큰 가방에서 꺼낸 자투리 천으로 자신의 치마에 자꾸 덧대어 기우고 또 기우고 할 뿐이었다. 미친 여자란 소문이 아니고, 그런 기이한 행동만 하지 않았다면 감히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카리스마 있는 얼굴이었다. 상당히 기품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무도회에 입고 갈 멋진 드레스를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백마 탄 왕자나 황금 수레를 탄 임금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반짇고리에서 꺼낸 천 몇 조각을 엄마 몰래 가방에 넣어두었다. 하교 후 돌아오는 길에 조심조심 다가가 자투리를 그 검은 가방 옆에 슬쩍 떨어뜨렸다. 나를 바라보는 눈길에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녀는 따스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고, 입가엔 어렴풋한 미소마저 머금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착각했다. 이 아줌마는 미친 게 아니라고. 어쩌면 더럽고 탁한 세상이 싫어서 옛날의 선비들이 청맹과니로 살아가듯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온 여자일 거라고! 그도 아니면 세상 구경 온 천사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다시 돌아갈 날을 위해 지금 수많은 깃털로 변할, 수없이 많은 천들을 달며 날개옷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거짓말처럼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나는 말했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그녀는 미친 여자가 아냐. 하늘나라에서 온 천사였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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