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묘(育苗)와 육아(育兒)

2025.03.27 16:38:41

신한서

전 청산면장

춘분도 지나고 완연한 봄이다. 지난달 고추 씨앗을 3 봉지 사 왔다.

한 봉지에 1천200알 들어있다. 봉지에 15만 원 하니까, 한 알에 125원 정도 되는 셈이다. 금값이다. 모든 농자재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그래도 농민은 봄이 오면 또 씨앗을 뿌린다. 이것이 바로 농심(農心)이다.

양지바른 텃밭에 비닐하우스를 정비하고 투광률이 높은 장수 필름으로 새로 갈았다. 전열 온상을 깔고 보온 준비에 들어갔다. 안방 아랫목에는 따뜻한 물에 며칠 담근 고추씨가 자루 속에서 잠을자고 있다. 준비된 고추 온상에 씨앗을 뿌린다. 요즘은 36공 자리 트레이(연결 폿트)에 촉이 튼 씨앗을 직접 심는다. 약 2주 정도 되면 바늘처럼 가느다란 싹이 올라온다. 이렇게 약 60~70일 정도 키워서 본 포에 옮겨 심는다.

옛날부터 어른들은 묘 농사가 반농사라 하였다. 그만큼 육묘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또한 버릇없는 청년에게 '싹수가 노랗다'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만큼 새싹, 육묘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농민이면 누구나 씨앗을 뿌리고 어린 묘를 기른다. 좀 힘들긴 해도 농작업 중에서 육묘할 때가 가장 기대와 희망에 부푼다. 육아도 마찬가지로 힘은 들지만 삶의 여정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아주 작은 씨앗 속에는 새 생명을 잉태하고 성장한다. 동글동글한 아주 작은 씨앗에 적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면 어느새 단단한 껍질을 깨고 촉이 튼다. 그 촉이 자라서 새싹이 되고 뿌리도 나온다. 이것을 폿트에 옮겨 심으면 뿌리가 작은 공간을 휘감아 가득 채운다. 자그마한 하나의 씨앗이 어린싹으로, 튼튼한 모종으로 자란다. 거기서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가 열린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농부들은 육아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육묘에서 삶을 배우고 터득하며 삶의 지혜를 축적하게 된다. 그러면서 농업과 농촌, 농민을 이해하고 나아가 인생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어린싹을 기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육묘가 우리 인생과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육묘는 섬세한 관찰이 필요한 작업이다. 싹을 튼튼하게 키워야 본포에 정식했을 때 몸살을 하지 않고 잘 자란다. 그래야만 병충해도 강하고 튼튼하게 자라서 알차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건강하게 키워야 성장도 잘하고 평생 건강하게 살아간다. 2~3월 차가운 공기가 두려워 너무 따뜻하게 키우면 허약하게 키만 커서 웃자란다. 이를 방지하고 건강한 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차가운 외부 환경에 적당히 노출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너무 과잉보호하면 유약하여 사회적응 능력이 떨어진다. 어릴 때부터 적당히 사회에 노출시켜 자체적으로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어떠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적응하게 된다.

이와 같이 직접 어린 묘를 기르면서 터득한 지혜가 육아에도 큰 도움이 된다. 따스한 부모의 품 안에서 독립할 수 있는 인격체로 길러내는 일, 농부가 밭에 심을 어린 묘를 키워내는 일과 너무나 흡사하다. 온상에서 푸릇푸릇 자라는 어린 새싹들이 아이들처럼 느껴져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매년 겨울과 봄 사이, 온실에 씨앗을 뿌리고 어린 묘를 기른다. 앞으로 농민이라는 이름으로 육아의 지혜를 터득하게 하는 파종을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다. 또한 농민으로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걱정 없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나마 농민으로서 육묘하면서 육아의 지혜와 인생의 의미를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은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저출산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지역 소멸이란 단어가 화두로 등장한 지 꽤 오래됐다. 그 가장 큰 이유가 육아의 문제다, 맞벌이하면서 육아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농촌 여성의 육아 문제는 더욱더 취약한 실정이다. 올봄에도 변함없이 온상에 씨앗을 뿌리고 어린싹을 길러낸다. 여기서 농민의 경제적 소득 외에 덤으로 육아와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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