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老兵)이 부르는 5월의 노래

2024.05.30 16:19:53

신한서

전 옥천군 친환경 농축산과장

아까시 향기 짙은 5월이 되면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다. 수도군단 155 야전공병대에서 30개월째 짬밥을 먹던 말년 병장 때의 일이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1979년 10.26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수도권에 계엄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대학교마다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서울 시내에는 최루탄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부대에는 공병대라 시위 진압용 바리 케이트 제작에 비상이 걸렸다. 용접 병들이 며칠째 밤을 새웠다. 눈을 다친 용접 병들이 국군 수도 통합병원으로 실려 갔다. 서울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한국 현대사의 큰 사건 5·18 광주사태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먼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배경을 잠시 살펴보자. 1979년 10월16일 부마사태가 일어났다. 부산.마산지역 대학생을 중심으로 유신철폐와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며 시위가 벌어진다. 그해 8월 YH무역 여성 노동자의 신민당사 점거 농성 사건이 발생하고 김영삼 총재를 국회의원에서 제명하자 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본 사건이 10.26으로 이어져 유신정권이 몰락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어서 전두환을 중심으로 신군부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 연행하면서 권력을 잡는 12.12 사건이 발생한다.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가택연금에서 해제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를 당시 '서울의 봄'이라 하였다. 그런 와중에 1980년 5월 17일 수도권에 발령되었던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정치활동 금지 조치로 김대중을 비롯한 재야 정치인 20여 명이 구속되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다음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필자와 한 내무반에 근무하던 전우 중에 광주 출신 2명이 있었다. 가족들과 전화 통화도 되지 않았다. 5·18 사태가 끝난 후 광주 출신 장병들은 2박 3일간 특박을 다녀오기도 했다. 신문, 방송도 완전히 통제되었다. 시민군에 의하여 예비군 무기고가 털리고 MBC 방송사, 전남 도청 등이 점령되어 무정부 상태가 10일간 지속되었다.

그렇다면 유독 왜 광주에서만 대규모 사태가 발생하였는가.

첫째, 직접적인 원인은 공수부대의 과잉 진압이라 생각된다. 필자도 가끔 현역 시절 서울에서 출동 경험이 있다. 시위 현장에서는 사소한 일로 충돌하면 서로 흥분하면서 확산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공수부대가 아닌 경찰이나 일반 부대에서 신중하게 개입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둘째, 호남 출신의 유력한 대권후보 김대중 선생이 구속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셋째, 근본적인 문제는 12·12로 무리하게 권력을 손에 쥔 신군부의 과도한 정치 야욕이었다.

필자는 지금도 간혹 5·18 작전에 참여했던 군인들을 접하게 된다. 몇 해 전 불행하게 짧은 생을 마감한 지인이 한 명 있다. 매일 오후가 되면 술에 젖어있다. 5·18 작전 투입 트라우마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홀로 남은 부인은 최저임금 일용 근로자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동시대 젊은이로서 한 사람은 대학생으로 또 다른 한 사람은 군인으로서 국가의 부름을 받고 5·18 현장에서 함께 희생된 청년 중의 한 사람이다.

필자는 언제부턴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두 가지 큰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자랑스러운 국가 유공자 명단을 쉬쉬하고 밝히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 유공자 선정을 보훈부 장관이 하지 않고 광주시장이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45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짬밥을 먹으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온몸으로 느꼈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러한 불행한 사건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5·18 국가 유공자 명단을 떳떳하게 공개하고 모든 국민에게 존경받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5·18 국가 유공자뿐만 아니라 현장에 직접 투입되어 희생된 군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 같은 대한민국의 청년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는 노병이 되었다. 오월이 되면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산 자여 따르라." 임의 행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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