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의 헌법정신,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

2023.03.30 17:20:45

신한서

전 옥천군 친환경농축산과장

3월! 벌써 양지쪽에는 노란 산수유 꽃이 꿀벌들을 유혹하고 있다. 공익직불금 신청을 위한 농민들의 행렬이 꿀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먼저 농어촌공사에 들러 농지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읍.면사무소에 가서 농지 대장에 등록한 다음,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농업경영체에 등록한다. 그래야만 공익직불금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월 말까지 농지소재지 읍.면사무소에서 공익직불금 신청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제1항에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소작제도는 금지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경자유전(耕者有田)'이란 농민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할 수 없다는 뜻이다.

1949년 제정 공포한 농지개혁법은 경자유전의 헌법정신을 실행한 한국 농정사에 가장 큰 사건이었다. 농지를 농민에게 돌려줌으로써 지주제를 철폐하고 자작농 체계를 갖춤으로써 자본주의국가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농지개혁의 기본 철학인 경자유전의 헌법정신에 대한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첫째, 고려 31대 공민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365년 개혁가 신돈(辛旽)을 발탁하여 전민변정도감(田民辯正都監)을 설치한다. 권세가들이 부당하게 차지한 농지를 농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임시 관아였다. "이유 없이 강탈한 농지는 돌려주고, 양민을 노예로 삼은 자는 풀어줘라, 기한 내 시정하지 않으면 극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며 개혁을 단행하였다. 백성들은 구세주가 나타났다며 환호하였으나 권문세족들의 심한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다. 결국 권문세가들의 노골적인 방해와 저항으로 개혁은 좌절되었고 신돈마저 실각하면서 공민왕의 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둘째,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경자유전과 지주철폐만이 백성을 부유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농업사상으로는 중농과 3농주의(편농, 후농, 상농)를 강조하였다. 250년 전 농지를 농민에게 돌려주어야 생산성도 높아지고 농민들도 소작인이라는 예속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이미 주장하였다.

셋째,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다. 동학농민군이 정부에게 요구한 폐정개혁 안에도 "토지는 똑같이 나누어 경작한다"라는 경자유전의 정신이 들어있다. 이 운동은 현재 우리나라 인권과 농민운동이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넷째, 농지개혁 시행이다. 8·15 광복과 함께 지주 계층이던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우리보다 한발 앞서 1946년 3월 5일 북한 김일성 먼저 농지개혁을 단행한다.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으로 단행하여 체제 우위를 선점하려 했다. 따라서 이승만 정권도 농지개혁을 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조성되었다. 1949년 6월 21일 농지개혁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해방 후 정치적 불안 해소와 민주자본주의 국가 건설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북한과는 달리 유상몰수 유상분배 원칙을 고수하였다.

농가당 3㏊ 이상 소유하고 있는 농지는 평년 생산량의 1.5 배를 5년간 곡물로 상환하도록 했다. 1950~1954년까지 정곡(벼)과 보리로 상환하였다. 이때 분배농지 상환 증서를 지주에게 주었고, 면사무소에는 분배농지 상환 대장을 비치하여 관리하였다.

다섯째, 1996년 오늘의 농지법 시행이다. 주요 내용은 농지소유 원칙을 농업인에 한정하였다. 농지매매 증명 제도를 폐지하고 농지취득자격 증명제를 도입하여 처분의무를 부과하였다. 특히 2022년 8월 시행된 농지대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농지소재지 읍일·면장은 반드시 필지별로 작성 관리하도록 했다. 대신 종전의 농지원부는 폐지하였다. 농지의 소유와 이용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투기를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다.

1949년 단행한 농지개혁이야말로 경자유전의 원칙을 제도적으로 실행한 출발점이었다. 농지를 농민에게 돌려주고, 자경농으로 신분을 회복한 것이다. 자경에 따른 생산성 향상으로 식량 생산량이 급속히 증가함으로써 반만년 유사 이래 국민을 배고픔에서 해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헌법정신이 바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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