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 그곳에 터를 잡은 지 벌써 40년이 되었다.
오랜만에 읍내 삼부자 식당에서 뒷고기에 소주 한잔 걸쳤다. 운동 겸 차를 놓고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군청을 지나 소방서 앞을 지나고, 고속도로 다리를 지나 농어촌공사 앞을 지난다. 코끝에 와닿는 공기의 질이 다르다. 신선하고 상쾌하다. 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구읍 사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옥향과 향수 마을 5백여 세대가 모여 사는 아파트촌과 일반주택 사는 주민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전형적인 시골 읍내 풍광이다.
입춘과 우수가 지났다. 성급한 향수공원 청매화가 살며시 눈을 뜬다. 교동 호수 청둥오리들의 애정행각이 뜨겁다. 아침 일찍 호수를 돌다 보면 가끔 수달을 만나는 날도 있다. 교동 호수에서 흐르는 시냇물이 실개천을 이룬다. 정지용 생가가 있고 전통 체험관과 육영수 생가가 있다. 그 앞에는 새로 들어서는 e 편한세상 아파트가 위용을 자랑한다. 넓은 들 동쪽 끝 언덕이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개나리, 광진 어린이집이 있고 죽향 초등학교가 있다. 죽향초는 정지용과 육영수를 배출한 학교다. 그 앞에는 최신식 목욕탕이 있어 문전성시를 이룬다. 사람이 살아 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자연환경과 먹거리다. 맑은 공기는 기본이고 맛집이란 맛집은 구읍에 다 모였다. 교동 섣바탱이 곤드레밥, 복골 올갱이, 염소 맛 집,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이, 송어촌, 묵집, 옥천에서 가장 오래된 중식당 문정식당이 있다.
보은, 옥천, 영동 남부 3군 유일의 2차 진료 기관 옥천성모병원이 있다. 옥천에서 유일하게 병원에서 진료와 약 처방을 동시에 한다. 최신식 장례식장이 있다. 그 언저리 명가에는 대도시 못지않은 웨딩홀과 대형 연회장이 있다. 그 앞에는 전국에도 빠지지 않는 옥천 우시장이 있다. 종전과는 다르게 모든 소를 전자경매로 한다. 한우 농가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육영수 여사 생가 주변에는 옥천향교와 옥주사마소가 있다. 일제강점기 경부선 철도가 생기면서 상권이 구읍에서 지금의 옥천 시내로 옮겨졌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이 바로 구읍이다. 옥천읍사무소 터가 있고, 옥천여중 건물이 남아있다.
병원이 있고 학교가 있다. 군청이나, 읍사무소도 걸어서 10분 거리다. 소시민들이 살기에는 최상의 조건이다.
몇 해 전부터는 전통 체험관 한옥마을 체험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주말에는 예약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다. 육영수 여사 생가, 정지용 생가와 함께 구읍의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교동 호수에 새로운 관광용 다리가 설치 중이다. 개통되면 또 하나의 명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올봄 벚꽃 터널과 함께 벌써부터 가슴을 설레게 한다. 봄이 되면 실개천 시냇물이 강아지처럼 기어다닌다. 구읍에서 안내까지 37번 국도의 벚꽃 터널이 상춘객의 마음을 묶어놓는다. 여름이 되면 육영수 생가 앞 연꽃과 그 향기에 취해 몰려드는 꿀벌들의 모습이 화룡점정이다. 가을이면 마성산 자락, 도토리 줍는 아낙네와 다람쥐 사이의 먹이 경쟁이 볼만하다. 겨울이 되면 옥천 묵집에서 묵밥에 도토리 파전, 막걸리 한 사발 걸치고, 문정식당 짬뽕 한 그릇 하면 세상에 부러울게 없다.
동네 아저씨 같이 겸손한 마성산이 사시사철 손을 내민다. 고리산에서 불어오는 누룽지 향기 같은 흙냄새가 가슴을 파고든다. 그 아래 펼쳐진 전통 한옥마을 담장에 피어난 능소화가 목에 힘을 잔뜩 준다.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운 곳,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꿈에도 차마 잊을 수 없는 그곳, 대한민국 향수의 본향 옥천 구읍에 살고 있는 그 자체가 행복이요 자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