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패왕 항우는 기운이 산도 뽑아버린다는 천하장사에 전투에서는 달인이었지만 결국 해하에서 자결하고 천하는 유방에게 돌아가니 기원전 202년에 한나라가 건국 된다. 이 한나라 초기에 '가의(賈誼)'라고 하는 천재 사상가가 나타났는데, 이 가의가 남긴 글 중에 <과진론(過秦論)>이라는 작품이 있다. 제목은 "진나라의 잘못에 대해 논한다"는 의미인데, 진나라가 어떻게 강한 국력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서술한 뒤, 이렇게 강한 진나라가 남의 집에서 품팔이나 하던 진승이란 자가 변변한 무기도 없이 수자리에 끌려가던 반 노예상태의 병졸들 몇백 명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자, 천하가 호응하여 일어나 결국 진나라가 멸망에 이르게 된 과정을 적고 있다. 진승의 반란 당시 진나라는 여전히 막강하였으니 진나라가 약해진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진승이나 그의 부대가 엘리트 정예병도 아니니 그들이 더욱 강했던 것도 아닌데 왜 진나라는 순식간에 무너졌을까? 결국 <과진론>의 요점은 진나라처럼 정치해서는 안 되니 진나라 제도들을 타파하고, 번진의 세력을 약화시키며, 북방 흉노와는 화친하고, 무엇보다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진승은 기원전 209년 7월에 반란을 일으켰는데 바로 진시황이 죽은 다음 해로서 진이세 황제가 즉위 한 지 딱 1년 째 되던 때였다. 가의가 이 무렵의 상황에 대해 쓴 말이 바로 "백성의 고통은 새 임금의 자산"이란 표현이다. 이 말의 원문은 "천하효효, 신주지자(天下囂囂, 新主之資)"이다. '효효'란 '시끄럽다'는 것인데, 온 세상이 백성들의 신음, 불만으로 가득차 있다는 말이다. 가령 이처럼 살기 힘든 상황에서 웬만해선 이 보다 못할 수는 없으니 새로 등극하는 군주에게 백성들은 기대를 갖게 마련이므로, 지금 백성들의 고통이 새 군주에게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12월 3일에 비상계엄이 포고되었는데, 21세기 한국, 그것도 평소 흔히 있는 북한의 도발이나 대규모 시위도 없는 꽤나 평온한 연말에 뜬금없는 '비상계엄'에 사람들은 황당해하고, 자존심 상해하며, 분노하였다. 그래서 여당에서도 계엄 해제 동의 표결에 동참하였고, 나아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이 당시 윤대통령의 지지율은 대체로 11%대였다. 흔히 보수진영으로 분류되는 언론까지 포함하여 연일 '내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계엄을 비판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백성들의 신음과 불만이 천지를 가득 메우는 "천하효효"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의 탄핵 이후 다소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대통령 직위를 수행하고 있을 때도 20~30%를 겨우 오가던 대통령 지지율이 연일 상승하더니 이제는 50%대에 진입하였다고 한다. 물론 지지율이란 신기루 같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특이한 일임은 분명하다.
요즘 정가에서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하는 흑묘백묘론이 유행하고 있다. 이것은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정치만 깨끗하게 한다면 국민들에게 있어 어느 정당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천하효효"의 비상시국을 야기한 주체에 대한 지지율이 오히려 올라간다는 민심의 향배에 대해 정치인들은 처절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