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 추운 날씨에도 몸을 움츠린 채 버티고 있는 다육이가 옆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인간사와는 무관한 듯 삶을 지탱하기 위해 무심히 곁 뿌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그저 천연덕스러워 보입니다. 지난해 유난히도 더운 날 귀엽고 통통했던 멘도사 다육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일이 문득 떠오릅니다. 태양을 좋아한다 생각해서 온종일 볕을 쪼이게 했는데 그런 무지한 행동이 몇 년을 함께 하며 기쁨을 준 사랑스러운 모습과 영영 이별하게 했습니다.
나의 공간에 자리를 잡고 함께 생활하고 있는 화분들은 첫 방문 때 달고 있던 이름표가 지금도 그대로 달려 있습니다. 이름표에는 살아가기 적합한 물의 양과 빛의 양 등 생태조건이 적혀있습니다. 생김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영양분을 흡수하는 방식도 다른 것을 보면 우리 사람이 살아가는 것과 식물이 살아가는 방법은 커다란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을 싫어하는 나무에 매일 물을 흠뻑 준다면 머지않아 뿌리가 썩어갈 것이고 햇볕을 좋아하지 않는 화초가 오랜 기간 뙤약볕을 쪼이면 잎이 타들어 갈 것은 자명한 일이겠지요. 무엇이든 제 분수(分數)가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며 살아왔음을 녹아버린 다육이 멘도사의 생을 보며 뉘우치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아닐까요? 그 이해하려는 마음은 그 사람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마음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 물을 가장 필요로 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햇볕을 가장 필요로 할 것이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을 진심으로 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어떤 사람은 혼자 조용히 마음의 평안을 고대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바라고 하고 싶은 대로 내뱉은 언행이 타인을 언짢게 하면서 내 마음도 상처를 입고 굳은살처럼 딱딱하게 메말라 있음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무뎌진 감정과 경직된 사고로 포장된 '나'라는 존재가 드넓은 사막 위에 가시가 촘촘히 박힌 선인장 같습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배려심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사람마다 바라는 것도 다르고 양분을 담을 그릇도 제각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명의 발달로 예전과 달리 지금은 너무도 다양한 직업이 존재합니다. IT 산업이 발달하고 사람의 욕구도 다양해지다 보니 내가 학창 시절에 꿈꾸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고 예측하지 못했던 직업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상상으로만 여겼던 일들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여 글도 쓰고 사람의 몸을 치료하고 음식을 나를 거라는 예상을 그 누가 했을까요? 너무도 빠르고 다양하게 세상은 변화를 가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 본디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특성이 있지요. 그 특성은 다름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숲에서 굳건히 자라고 있는 나무도, 차들이 오가는 길가에서 흔들리며 피어있는 꽃들도, 우리 집 베란다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꽃들도 나름의 다름이 있습니다. '그래그래, 너는 그랬구나' 타인을 인정하고 배려하며 살아가자는 2025년 새해 소망을 가슴에 고이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