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줄타기

2020.06.30 16:46:00

김경숙

청주시 문예운영과 문예운영팀장

처음엔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오래도록 주변을 맴돌며 마음을 짓누르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세상이 시끄럽다. 전처럼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기가 힘들다. 혹시 모를 감염으로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심신이 지쳐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가 없다.

내리쬐는 태양의 뜨거운 열기로 시장 바닥에 진열된 축 늘어진 열무 단처럼 몸은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마스크를 하고 다녀야 하는지. 예전의 생활이 그립기만 하다. 맘대로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가고 싶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는 생활은, 지금까지 누려온 삶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깨닫게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큰소리치며 세상을 호령하던 인간이. 몇 백 년을 살 것처럼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평온한 삶은 위태위태하기만 하다. 어릴 적에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올 거라는 소리에 "천지에 물인데 무슨 물을 사 먹어"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맘 놓고 공기를 마실 수도 없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어느 영화 속에 나오는 장면처럼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 공상과학 영화의 내용처럼 "로봇의 지배를 받는 날이 올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다가 얼굴 절반을 가리고 걸어가는 내 모습이 비친 쇼윈도를 바라본다. 줄 위에 서 있는 광대가 떠오른다. 내가 살아가는 삶이 어쩌면, 줄 위에서 곡예를 펼치는 광대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첫 울음을 터뜨리고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나를 기다리며, 두 손을 꼭 쥐고 긴장했을 가족. 온갖 재롱부리는 모습에 기뻐하는 모습. 어느 한순간은 살얼음 걷듯 조심스럽게. 또 어느 때는 화려한 곡선을 그리듯 높이 점핑하는 모습에 환호를 보내고. 이제 갖은 우여곡절 끝에 백세 인생 줄의 중간에 걸터앉은 내 모습. 그리고 내디뎌야 하는 걸음걸음. 언젠가는 장대를 붙잡고 여유를 부릴 날도 오겠거니 하며 살아가는 모습. 줄 위에 서 있는 광대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에 우쭐대기도 하고. 왔던 길을 무사히 다시 가야 하는 조바심으로 온몸의 세포가 굳어지는 중압감도 느껴진다.

인생이란 줄 위에서 한바탕 곡예를 펼치고 가는 모습. 사람마다 그 줄의 길이와 굵기는 다르겠지만. 단조롭게 살다 가기보다는 갖은 재주를 다 펼치고 가는 삶도 흥미롭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천년만년 호령할 기세등등한 모습도 잠시, 누구나 줄 위에서 내려가야 하는 삶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2020년이라는 새롭게 펼쳐진 줄 위에 발을 내디딘 지도 엊그제 같은데, 마스크를 쓰고 무미건조하게 걷다 보니 어느덧 줄을 꽉 묶은 나무에 손이 닿는다. 다시 되돌아가면 2020년 한 해도 마무리가 될 텐데. 이제 남은 반년은 신명나게 한 판 놀 수는 없을지라도 땀 흘리는 보람된 하루하루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밟고 걸어가는 줄이 가느다란 비닐 끈이라도, 해마다 그 한 줄 한 줄이 쌓여 내 삶을 탄탄하게 엮어주는 튼실한 동아줄이기를 고대해본다. 내 삶의 주인공은 어느 누구도 아닌 내가 아니던가. 구경꾼으로 살아가기보다는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아가야겠다. 줄 타는 광대처럼. 지금 이 순간이 고통스럽고 힘겨울지라도 줄을 놓지 않고 타리라. 줄 위에서 불안한 자세로 비틀거리다가 사람들에게 우려의 탄성을 들을지라도. 그리고 가끔은 기발한 묘기로 사람들의 가슴을 졸이게도 하면서.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며 살아가리라. 이제 다시 되돌아서서, 첫발을 내디딘 원점으로 걸어가서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할 7월의 첫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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