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낭만

2019.07.09 15:53:59

김경숙

청주오송도서관 운영팀장·수필가

늦은 퇴근길, 따가운 햇살을 집어삼킨 어둠이 짙게 내린 들판에서 개구리울음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개구리 합창소리에 벅차 오른 가슴은 빵빵해진 풍선처럼 터질 듯하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소리에 심취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 어릴 적, 덕유리 새말을 향해 날아간다. 이제는 대청호에 잠겨 갈 수도 없는 곳이 되어버린 할머니 댁 마을 어귀에 안착한다. 미루나무 신작로를 따라 작은 발걸음으로 한 참을 걸어가면 둥구나무 한 그루가 반갑게 맞아주던 곳이었다. 둥구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농사일로 흘린 비지땀을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에 씻어내기도 하고. 따끈하고 포실한 감자를 나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할아버지들이 짚으로 새끼를 꽈가며 콧노래를 부르던 모습들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멍석 위에서 곤하게 잠든 손주를 위해 열심히 부채질하는 할머니의 모습도 눈을 꽉 채운다. 주마등처럼 흘러간 지나간 추억들이 고향의 진한 그리움으로 밀려와 세차게 온몸을 감싸준다. 저녁나절 앞마당에 자리한 평상에 누우면 깜깜한 밤하늘에 빼곡히 박혀있던 별들이 내 얼굴로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았었다. 반짝이는 별들을 세며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던 그리운 시절의 추억으로 개구리 합창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감미롭다.

드높이 올라간 시멘트 건물들 틈에서 무감각해졌던 온 신경이 작은 풀벌레의 움직임에도 민첩하게 반응한다. 풋풋한 풀 향기에 수많은 세포가 통통 튀는 듯, 상큼 발랄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늘 마주하던 것들임에도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주변의 작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있음은 퇴근길 여유로움이 가져다주는 선물일 것이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던 미호천조차도 색다른 맛으로 다가온다. 늘 오가던 길. 강 건너 멀리 보이는 화려한 불빛이 현실로의 회귀를 재촉하는 듯 더없이 환한 빛으로 다가와 나를 삼키려 한다.

개구리 합창 공연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집으로 향하는 아쉬운 마음을 며칠 전 서울 북촌에서 만났던 참새와 채송화로 달래 본다. 어릴 적 흔히 보았던 참새를 이젠 집 근처에서는 볼 수도 없다. 꽃밭 맨 앞줄에서 작은 몸으로 피어낸 꽃이 앙증맞게 예뻤던 채송화도 흔히 볼 수 없다. 먼 옛날 그리운 추억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 뿐이었는데 옛것이 고스란히 남겨진 북촌마을에서 만날 수 있어 놀라웠다. 가끔 어릴 적 시골집 모습을 보고 싶어 들르는 수암골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겨움이 그곳에 있었다. 자꾸만 늘어가는 카페들과 많은 차량들로 도시의 번화가가 된 수암골을 보고 얼마나 많은 아쉬움이 밀려왔었는지. 사람도 마음 놓고 거닐 수 없는 도심 한 복판의 거리를 대변하는 듯 서로 엉켜있는 차들을 보면 고향을 빼앗긴 것처럼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고향을 잃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옛 것을 그대로 보존하면 좋을 텐데'하는 바람이 밀려왔다. 예스러움과 현대의 미(美)를 더한,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진 공간 창출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찾고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을 꿈꾸어 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손 때 묻은 것들이 정겹다. 반듯하게 깎은 듯 정형화된 건물보다는 소박하고 자연미가 넘치는 용마루가 있는 초가집과 기와집이 좋다. 끝없이 높아가는 고층 건물 틈에서도 나지막하게 자리한 시골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고향처럼 푸근함이 깃든 집과 나무와 꽃과 새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좋겠지만. 추억 속에 빠져 들 수 있는, 정겨운 냄새가 피어나는 공간에서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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