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와 기타

2019.11.12 16:34:50

김경숙

청주시청 문예운영과 문예운영팀장 ·수필가

가을이 깊어 간다. 노란 은행잎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길을 걷고 싶다. 산길을 걸으며 울긋불긋 물든 단풍에 흠뻑 취해보고도 싶다. 무심히 걷던 길에서 정갈하게 가꾼 한옥에 감을 깎아 걸어 놓은 풍경이 정겹게 다가온다. 가을이면 더없이 그리워지는 것들이 있다. 오늘도 황금물결이 사라진 논에서 친구들과 벼이삭을 줍고 뛰놀던 어린 나를 그리며 심한 가을 몸살을 앓는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을 타며 술렁이는 마음을 부여안고 공연장을 향한다. 우리의 멋들어진 가락은 언제나 들어도 흥겹다. 온몸으로 신명 나게 장고 치는 모습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머리를 흔들며 두 팔을 휘젓는 소리에 절로 몸이 움직인다. 가을 몸살에 열이 끓던 몸은 어느새 흥에 취해 들썩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연은 피리와 기타의 만남이다. 국악과 양악의 만남. 한복을 곱게 입고 피리를 든 연주자와 기타를 메고 앉은 연주자의 모습은 눈에 익지 않다. 어떤 소리를 만들어 낼까 조바심을 갖고 귀를 기울인다. 피리를 부는 소리에 살며시 뜯어주는 기타 줄 소리가 제법 잘 어울린다. 너무 튀지 않게 뜯어내는 소리는 거문고를 뜯는 소리와는 색다른 맛이지만 묘한 맛을 느끼게 한다. 겉만 보고 피리와 기타가 어울릴까 하고 의구심을 가졌는데 오산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있을 때 우락부락한 모습의 남자와 예쁘고 귀여운 여자가 들어섰다. 참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앉아서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천생연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와 정반대의 모습도 종종 본다. 외모가 출중한 멋진 남자가 얼굴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모습의 여자와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도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체격이 무척 좋아 보여 목소리도 우렁차고 거칠 것 같은데 오히려 목소리는 개미 소리 같고 수줍어하기까지도 한다. 그 반면에 작고 가녀린 모습으로 보호 본능을 갖게 하는데 목소리도 힘차고 당당한 모습인 경우도 있다. 살아오면서 겉모습만 보고 편견을 갖고 사람을 대한 적은 없었는지 반성을 해본다. 시끄럽게만 들리는 사투리 소리에 '그 사람 고향은 어디 일거야'라는 생각으로 사람 성격을 판단하려는 생각. 외국인의 얼굴 생김과 피부색으로 멀리하려는 경우 등등. 아직도 없어지지 않는 선입견을 어떻게 지워야 할까 고민도 해본다. 내가 이런 선입견으로 사람을 대하는데 타인도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을까?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데 어찌 나를 온 마음으로 대할까.

사람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어찌 홀로 살아갈까.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길이 아닌가. 말로는 선입견을 버리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자고 하지만 그 마음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 지금껏, 어릴 적부터 매겨지는 성적에 아등바등 살아온 탓은 아닐까? 내일모레이면 대입 수학능력시험이다. 잘 사는 기준이 무엇인지. 지천명이라는 길에 접어들어선 지 오래 건 만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연말이 다가오니 여기저기서 자신의 성과에 대한 결과에 열을 올린다. 열심히 살고 그에 따른 튼실한 열매도 얻으면 좋겠는데. 그런 조화로운 조직을 이루어 내는 사회를 꿈꾸어본다.

피리와 기타가 만들어내는 화음처럼. 서로의 색깔을 살려주며 한 발 물러서고 양보하는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 그 어떤 악기와 사물이 만들어내는 소리도 견줄 수 없는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하모니. 최고의 멋진 조화로움이 아닐까. 생김도 소리도 다르지만,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맞춰 살아가는 세상. 피리와 기타의 음색이 내 마음에 울려 퍼지며 가을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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