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육이

2018.03.06 13:34:16

김경숙

청주시 팀장·수필가

입춘이 지나니 따스한 햇살이 소곤거린다. 봄을 부르는 창가로 다가갔다. 넓은 창틀에는 자그마한 화분들이 놓여 있다. 젖살이 오른 아가의 볼처럼 포동포동하고 보드라운 다육식물이 눈에 쏘옥 들어온다.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옆에 있는 화분은 같은 종류의 다육식물 임에도 그와는 정반대의 모양새다. 고단한 삶의 깊이만큼 새겨진 할머니의 주름살과도 같이 쭈글거리고 말라있다. 두 화분을 바라보니 한 어미에서 나온 자식들도 살아가는 삶의 무게가 다름이 느껴진다.

다육식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다육 식물은 선인장과, 용설란과, 대극과, 돌나물과 등의 다양한 과가 있으며 약 2만 종이 있다고 설명이 되어있다. 잎과 줄기에 물을 저장하고 있어 사막이나 비가 매우 적게 내리는 지역에서도 잘 자란단다. 겨울철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물을 줘도 되는데, 물이 부족하면 잎이 쭈글쭈글 말라 주의가 필요하다고 씌어있다. 그러고 보니, 두 다육식물 중 탱글탱글하게 물이 오른 것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았나 보다. 사람에게 관심 받고 정성스레 자랐음을 외관이 말해주고 있다. 말라비틀어진 다육식물은 왠지 안쓰럽다. 마른 다육식물을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옮긴 후 물을 흠뻑 주었다. 포동포동 탱글탱글한 제 모습을 다시 찾기를 바라며. 퇴근을 하면서 '내일 보자'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날 아침 '밤새 잘 지냈어·'하고 인사를 건넸다. 마치, 어제 실컷 먹은 물이 참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맙다고 말하는 듯하다. 틈이 날 때마다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얼굴에 주름살이 몇 개 없어졌네." 하면, 싱긋 웃는 것 같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에묘한 감동이 밀려온다. 백색 머리 할머니도 건강하게 오래 살면 다시 까만 머리가 나온다는 옛이야기가 기억난다. 주름투성이가 슬슬 물이 올라 통통함을 보인다. 생명력이 참 신기하고 놀랍다. 빽빽하게 달려있는 잎을 하나 따서, 화분 빈 공간에 심었다. 다육식물은 꺾꽂이를 해도 뿌리를 내리는 생명력이 아주 강하다고 들었다. 바라다보고 이야기하고 관심을 갖고 대하다 보니, 어느새 옆에 있던 포동포동한 다육식물처럼 통통하게 살이 쪄서 몽실몽실하다. 꽂아 놓은 다육식물 잎도 살고 싶은 강한 의지를 보이며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세상 빛을 본 이상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각오라도 한 듯 빠르게 변화하는 의지의 다육식물에게 생명의 가치를 배운다. 우주 만물 중 귀하지 않은 게 어디 있을까· 누구나, 무엇이든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여긴다. 다육식물이 창가에 있었던 것도 그 필요성에 의해서 일게다. 다육식물은 공기를 정화시키는 효과가 있단다. 게다가, 올망졸망한 것들이 귀엽기까지 하니, 사람들이 다육식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다. 어느 누구에게나 필요한 존재이길 갈망한다. 나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동료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다른 누구도 마찬가지 일거라는 생각이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관심 받고 사랑받길 원하는 꽃이 아니었던가! 맑은 공기를 선사해주는 다육식물처럼 우리도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정화(淨化) 시킬 수 있는 필요한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는 어느 꽃보다도 사람 꽃이 아름답다 하지 않나.

뜨거운 태양의 사막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나가는 다육식물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삶의 에너지를 태워나가야겠다. 봄 햇살처럼 따스한 마음 잃지 않고, 은은한 향기 담은 꽃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웃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나 자신의 꽃을 활짝 피워가야지. 다른 누군가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사람 냄새나는 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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