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제보자의 해고통지서

2018.02.22 14:16:15

오창근

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 국장

퇴근 후 전화를 했다. 전화 받는 목소리가 밝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을 통해 그들의 소중한 일자리였던 청주시상권활성화재단이 해산된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기 때문이다. 담담한 목소리로 "국장님, 그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되었네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그리고 한참 후 "국장님, 사실 오늘 해고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짐을 정리하기 위해 사무실에 있습니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난 할 말을 잊었다.

지난 8월이었다. 폭우피해로 청주가 시끄러웠고 우리 단체는 침수피해를 입은 농가를 찾아 복구 작업을 돕기 위해 분주했다. 대충 폭우피해가 갈무리 될 무렵 사무실로 두 분이 방문했다. 당신들이 근무하는 직장에서 일어난 일을 제보하기 위해서라고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준비한 자료를 건네고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그간에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들이 들려준 녹취 파일에는 쌍욕이 오가고, 책상을 밀치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들이 겪었던 인권침해 사실을 털어놓으며 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항변했다.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퇴사 종용, 업무배제 등으로 한 분은 모욕감과 자살충동, 불면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사업 진행 과정에서 비리 의혹을 제보했다.

충격적이지만 그분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단체를 방문해 도움을 요청하는 분 중에는 능력 밖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억울한 측면만 부각해 합리적 판단이 힘들 때가 많다. 우선 1년 사이에 서너 명의 직원이 그만두었다고 하기에 어렵게 그분들 연락처를 구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분들은 "그곳은 사람 다닐 곳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몇 달 만에 그만 두었겠습니까"라며 그곳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사실을 뒷받침해 주었다.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을 알렸고 청주시는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결과 공익제보 내용이 사실로 드러났으며 가해자에게는 징계와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공무원에게는 문책이 따랐다. 그런데 결국 재단이 해산되고 말았다. 문제가 된 직원에 대한 책임추궁과 감사결과에 따른 징계로 재단이 정상 운영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아예 재단을 해산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청주시의회와 청주시를 방문해 해산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오늘 저녁 시간되면 소주 한잔 어떠냐고·" 한참 후 걸려온 전화에서 "오늘은 집에 일이 있어 힘들고 다음에 하면 어떨까요·"라고 해 그러자고 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먹먹한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두 분 모두 가정이 있고, 두 아이의 아빠다. 낼 모래 설을 앞두고 해고 통지서를 받아 쥔 두 분의 가장이 느꼈을 절망감이 내게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사람들은 시민단체 찾아가 억울한 이야기를 하면 들어주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위해 팔 걷어붙이고 도와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 단체를 찾아오는 분들을 보면 법적으로 할 만큼 해보고 정부기관에 민원을 내보았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을 때 마지막 종착지처럼 찾는 경우가 많았다. 매일 한두 건의 민원 전화와 방문자가 있지만 정작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생각만큼의 힘이 없다. 그래서 어렵게 찾은 발걸음을 돌릴 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두 분이 한 행동은 분명히 옳은 일이다. 공익을 위해 제보했는데 정작 두 분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나조차 어려운데 당사자인 그분들은 어떨까· 그래서 설밑에 해고통지서를 받은 민원인에게 소주 한 잔 대접하는 것으로 미안한 맘을 대신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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