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주

2014.02.16 14:13:21

윤상원

영동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교수·사단법인 한국발명교육학회 회장

"거듭 감사드립니다."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크고 작은 만찬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정례화 된 인사말이다. 정감이 없어 보인다. 요 때 분위기를 반전시킬 일등공신이 있다. 바로 만찬주다. 신년에 한 주류업체가 만찬주로 대박 났다는 소식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백련 맑은 술(충남 당진 産)'과 '자희향(전남 함평 産)'이 그 주인공이다. 해당 업체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이들 술이 '삼성 만찬酒'라는 별칭이 붙으면서 하루아침에 매출이 20배나 뛰었다고 한다. 팔고 싶어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하니, 그 성장세가 놀랄만하다. 최근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전통주 시장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대형백화점에서는 전통주 판매가 작년보다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만찬주의 저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공식 만찬주는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 선정된다. 먼저 전문가의 시음과 항목별 평가를 거쳐, 최종 행사 관계자들이 낙점하게 된다. 만찬주는 공식행사에 사용되는 술 중 가장 격(格)이 높다. 만찬주 선정 그 자체가 우수성이 입증된 결과다. 국제행사에서 만찬주로 선정되면, 그 명성을 타고 순식간에 돈 되는 상품으로 둔갑한다. 영세한 주류업체 입장에서는 성공보증수표를 받게 되는 셈이다. 과거 ASEM 및 APEC 정상회의 때 만찬주로 선정되었던 복분자주의 유명세는 그걸 입증한다. 아시아 및 유럽의 정상들은 "코리안 와인, 원더풀"로 평가했던 술이다. 미국 와인 시장에서는 '럭비공 와인'이란 애칭을 얻기도 했다. 충북 단양 대강 막걸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앉은 자리에서 6잔을 마셨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 외에도 국제행사에서 주목받은 스타 주류는 여럿 있다.

만찬주는 맛과 향은 물론 방향성, 단맛, 감칠맛 등의 미각효과가 탁월해 가문의 전승주로 자리매김해 온 술이다. 만찬주는 오랜 역사와 정통성, 그리고 철학이 담긴 술이다. 장인들은 만찬주에 혼을 넣었고, 열정과 창의성을 담았고, 오감의 정밀센서로 술을 빚었다. 그들은 하늘 마음 땅 마음으로 술과 하나가 되었다. 만찬주는 어쩌면 우주의 생명력이 담긴 신선주(神仙酒)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만년의 역사에 비해 전통주의 위상은 아직도 미비하기만 하다. 전통주 시장은 국내 전체 주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의 공식 만찬주나 건배주는 반짝인기에 그치는 경향이 많았다. 전통주 하면 '선물·저렴·약술' 등의 이미지가 강하다. 프랑스의 와인이나 일본의 사케처럼 세계 주류 시장에서 입지가 크지 않은 탓이다. 와인 시장의 규모는 갈수록 크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술을 사랑하지 않으면, 전통주는 설 자리가 없다. 그동안 각종 규제와 무관심 속에서 어렵게 맥을 이어온 우리의 전통주가 세계무대에서 활개를 펼 시점이 왔다. 앞으로 개발과 홍보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지자체의 정책적 지원과 국민적 관심이라는 순풍을 타고, 전 세계인이 애용하는 전통주를 기대해본다.

올해도 굵직굵직한 국제회의, 아시안게임, 정상회의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올해만큼은 충북지역의 술이 만찬주로 새롭게 탄생하였으면 한다. 사라져가는 전통주 발굴은 험난한 작업이지만, '황금'을 캐는 여정일지 모른다. 언제쯤이면 황금을 머금은 우리 지역의 만찬주에 흠뻑 취해 볼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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