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단장하는 여자, 훔쳐보는 남자

2014.01.20 18:01:46

백경미

충북도 여성발전센터 연구개발팀장

수많은 남성화가가 여자의 누드를 그렸다. 이 누드화에서 여성은 피 관찰자이며 관찰자는 남성이다. 여성은 그림 속의 여성을 통해 피 관찰자로서 판단되는 관습을 발견하며 보이지 않는 제3의 시선을 의식한 채 거울 앞에 앉아 몸단장을 한다. 한편 남자는 예술가로 관찰자로, 그리고 주체로 존재한다.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 그래서 다소 에로틱한 이 문장은 문화 속 중요한 장치인 관음증을 잘 설명해 준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비롯한 많은 누드화가 있지만 그림 속 여성들에게는 일률적인 특징이 있다.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듯 수줍고 때론 남자들을 만족시키는 성적 관찰대상으로의 자세, 그래서 그녀들은 벗었지만 조신한 자세를 잃지 않으며 시선은 정면을 향하지 않는다. 그 자세는 당시 문화적 주체이자 주 향유층이었던 남성의 관음증을 만족시켰다.

그러다 미술사 최악의 스캔들로 기록되는 마네의 '올랭피아'(1865)가 발표되고 마네는 협박과 비난의 중심에 선다. 이 그림이 그렇게 충격을 준 이유는 그림 속 여성의 자세 때문이었다. 화류계 여성으로 보이는 올랭피아는 적나라한 나체에 냉소적인 표정이다. 무엇보다 올랭피아가 적잖이 남성의 심기를 건드린 이유는 그녀가 훔쳐보는 상대에게 마치 '뭘 봐!'라는 듯 관객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관음증은 박탈되고 만다. 다른 사람의 성적 모습이나 행동을 엿보고 성적 만족을 얻는 관음증은 들킬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으로 더욱 흥분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뻔뻔하게 관객을 바라보는 모델이 '관음증'을 박탈해버린 것이다.

서양화를 예로 들었지만, 문화적 주체이자 향유자로서의 남성, 대상으로서 여성은 장르를 막론한 문화의 법칙이자 전통이었다. 그러나 문화의 장르와 더불어 문화의 향유층이 확장되면서 이 문화적 전통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여성 화가들이 등장하면서 그림 속 여성들은 아주 다양해진다. 매력주체로 그려지는 팜므파탈에서부터, 포효하는 혁명가, 악녀의 모습, 따스한 모성을 지닌 어머니 등 단지 관음증을 충족해주는 대상이 아닌 인간주체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관찰자로서의 남성, 대상으로서의 여성'이라는 관음증의 전통도 전복 가능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여성 문화비평가 재키 스테이시는 여성을 성적 구경거리, 남성을 능동적 보는 자로 이분화하는 전통적인 관음증의 개념을 비판하며 문화 주체의 재현에 따라 남성도 보이는 존재로 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로 소재를 돌려, 필자의 경험으론 '올드보이'를 통해 남성의 전라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데, 샤워하는 유지태의 뒷모습을 엿보는 '능동적 보는 자로서의 쾌락'이 괜.찮.았.던 기억이다.

매스미디어의 시대에 문화는 대중을 움직이고 또한 대중이 의미를 만들어내는 실천의 장으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가부장적 시각들을 전복시킬 수 있는 실천의 장으로도 유용하다. 문화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 미술사를 통해 확인되듯이 과거의 여성문화는 오늘의 여성문화와 다르다. 또 내일의 여성문화는 오늘의 여성문화와 다를 것이며 또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름'을 주도해나가는 역할은 우리 여성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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