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빔의 '빔'은 '빛내다', '꾸미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서지 작 '설빔'.
'비슴'의 고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어사전에서 '비슴'의 동사형 고어인 '빗다'를 찾으면 '빛내다', '꾸미다'라는 설명구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설빔은 '설을 맞아 몸을 새롭게 꾸미는 행동'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설빗음'이 '설비슴', '설비음'을 거쳐 오늘날의 '설빔'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말강술
청주(淸酒)의 순우리말로, 도내 북부지역에서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말강'은 글자 그대로 '말갛다'는 뜻이다. 동동주를 용수로 걸러내면 말강술을 얻을 수 있다.
설날 아침에 말강술을 마시면 한 해 나쁜 기운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속설이 내려오고 있다.
◇가래떡
국어사전에서 '가래'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둥글고 길게 늘이여 만든 것의 도막'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바로 가래떡은 길게 뽑은 떡을 말한다.
우리말 가락은 가늘면서 길은 모양을 말한다, 젓가락, 손가락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흰떡을 조금씩 떼어 손으로 비벼 둥글고 길게 문어발같이 늘리는데 권모(拳摸)라 한다.제석(除夕)에 권모를 엽전 모양으로 잘게 썰어 넣은 뒤 식구대로 한 그릇씩 먹으니 이것을 떡국(餠湯)이라 한다"는 표현이 보인다. 가래떡을 한자로는 권모(拳摸)라고 적었다.
◇청참(聽讖)
설날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 처음 듣는 짐승의 소리로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것을 말한다.
보통 날짐승의 소리로 일년의 운세를 판단했다. 선조들은 까치소리를 먼저 들으면 그해의 운수가 좋고, 까마귀소리를 들으면 그해 운수가 흉하다고 믿었다. 동국세시기가 청참에 대해 "새벽에 저자 거리로 나가서 방향에 상관없이 처음에 듣게 되는 소리로 일년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것을 청참이라고 한다"라고 적은 것으로 봐 조선시대 전국적으로 행해졌던 풍속으로 보인다.
◇문배(門排)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문간에 붙이는 그림이나 글씨를 말한다.(사진참조) 주로 문짝에 붙이기 때문에 '문화(門畵)'라고도 불렀다.
옛사람들은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문간에 붙이는 그림이나 글씨를 문배라고 불렀다. 세종시 전의 연기 합강리 모습.
조선초 성현(成俔)은 '처용'(處容)이라는 시에서 문배를 "사람도 아니, 귀신도 아니, 신선도 아니, 시뻘겋고 풍만한 얼굴, 하얗게 성긴 이, 솔개 어깨에 반쯤 걸친 청운포(靑雲袍)라. 신라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투어 그 얼굴을 분식(粉飾)하여 그려서, 요사(妖邪)를 물리치고 병을 예방하려고, 해마다 초하룻날 문에 붙이네"라고 적었다.
◇첨세병(添歲餠)
동국세시기에는 떡국을 '백탕(白湯)' 혹은 '병탕(餠湯)'이라고 적었다. 즉 겉모양이 희다고 하여 '백탕',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하여 '병탕'이라고 불렀다. 이밖에 떡국의 다소 어려운 표현으로 '첨세병(添歲餠)'이 있다. 이는 떡국을 먹음으로써 나이 하나를 더하게 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다.
실학자 이덕무는 그의 저서 청장관전서에서 첨세병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천만 번 방아에 쳐 눈빛이 둥그니(千杵萬椎雪色團) / 저 신선의 부엌에 든 금단과도 비슷하네(也能仙·比金丹) / 해마다 나이를 더하는 게 미우니(偏憎歲歲添新齒) 서글퍼라 나는 이제 먹고 싶지 않은 걸(··吾今不欲餐)'
◇문안비(問安婢)
양반 부녀자들이 새해 안부를 전하기 위해 대신 보낸 여자 노비를 말한다.
조선시대 양반 가정에서는 여자들의 외출이 자유스럽지 못하였다. 때문에 여자들은 정초 3일부터 15일 사이에 어린 여자 노비를 일가친척에게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렸다. 이때 문안을 받은 집에서는 반드시 그 문안비에게 세배상과 함께 약간의 세뱃돈을 주기도 했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광려(李匡呂)는 이 풍속을 '뉘 집 문안비가 문안하려고 뉘 집으로 들어가는고'(誰家問安婢 問安入誰家)라고 표현한 바 있다.
/ 조혁연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