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권위를 얻는 시대

2024.11.12 15:14:14

한영현

세명대학교 교수

2024년 전 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였던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며 재임에 성공했다. 유권자들은 이민자이자 유색인종으로서 미국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해리스가 아닌 트럼프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가 재임에 성공한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테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실패와 경제 불안정에 따른 문제들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고 판단된다.

모두 알다시피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로서 성공한 사업가의 대표적 상징이다. 번화한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세워져 위용을 과시하는 트럼프 타워는 도널드 트럼프의 성공과 부를 표상하는 가장 뛰어난 시각적 이미지이다. 몇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세계적인 인플레 현상으로 전 세계가 물가 상승과 소비 위축, 경제 불안정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현재 경제 양극화 문제는 사회 전반으로 점차 확대되고 그만큼 부자에 대한 욕망은 한층 더 절박해졌다. 경제적 위기와 궁핍에 따른 사회적 불안과 갈등은 결과적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국민에게 풍요와 안정에 대한 욕망을 자극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풍요와 안정의 기반은 결국 부자가 되는 데서 형성된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도널드 트럼프의 재임은 시대의 불안정 속에서 부자의 권위가 국민으로부터 정치적으로 재차 승인받는 상황을 보여 주는 사례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의 권위'라는 말에는 시대의 씁쓸함이 담겨 있다. 원래 권위는 어떤 분야에서 인정받고 영향력을 미칠 때 타인 혹은 대중으로부터 부여받게 된다. 그래서 위대한 인물이나 특정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업적을 쌓은 사람들이 주로 '권위자'로서 명예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요즘은 부자에게 권위가 주어지는 추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가령, 서울 어디에, 몇 평의, 어떤 브랜드의 집을 가지고 있느냐가 기타 사회적 지위보다 훨씬 더 중요해지고 있다. 직업과 업적, 성과 같은 것보다는 부자의 상징인 재화를 얼마나 보유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보는 타인의 시선과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진행된 급속한 인플레 경제와 소비 침체 속에서 경제 상황이 불안정해지면서 사회에서 부자에 대한 욕망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세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물질적 풍요와 안정은 삶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큰 행복의 조건인 많은 돈을 보유한 사람은 그것을 가진 것만으로도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한 권위를 가질 만하다. 대학생들이 '부자'를 되고 싶은 궁극의 꿈이자 직업으로 인식하는 시대의 풍조가 이를 잘 말해 준다. 돈의 액수에 따라 직업의 위계가 재조정되는 시대에 대학 연구직은 예전만큼 인기가 없다. 돈보다는 학문의 가치와 업적을 위해 열정을 바치고자 하는 젊은 연구진들이 고액 연봉을 제공하는 다른 직종 혹은 국가로 이직하는 현실을 다룬 언론 기사를 얼마 전 접하며 요즘 우리 사회의 핫 이슈인 의대 열풍을 다시 상기해 본다.

젊은 세대의 부자에 대한 열망을 탓하는 게 아니다. 이러한 사회적 풍토는 한낱 개인 혹은 특정 세대로부터 돌출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는 것도 잘못이 아니다. 시대가 초래한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다만, 권위를 단순히 '가지는 것'에만 국한하는 인식 자체에 대해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권위는 가지는 것과 나누고 베푸는 것의 균형감 속에서 비로소 명예롭게 지켜질 수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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