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 관련 보도가 뉴스를 장식하는 요즘이다.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성취한 만큼 작가와 문학에 대한 대중의 갑작스러운 관심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사실 한강 작가는 문학 분야에서는 예전부터 잘 알려진 소설가였지만 상대적으로 일반 대중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작가의 소설은 쉽게 읽을 수 없다.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전체 이야기와 연결하고 그것이 반영하는 현실과 역사의 맥락까지 고려하여 읽게 되면 책 장 한 장을 넘기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여기에 작가 특유의 비유와 문체 그리고 이 모든 요소의 조율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우면서도 묵직한 분위기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독서 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일반 독자들이 그의 소설을 많이 접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침체한 한국 문학과 출판 분야에 활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몇몇 보도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소설과 작가와 관련된 불필요하고 왜곡된 정보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독자로서 작가의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고 성실하게 읽는 것이 아닐까.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어 본 독자라면 알 수 있듯이 위대한 명작들 속에 형상화된 세계는 결코 단조롭거나 단순하지 않다. 인물들의 행위와 그들이 맞닥뜨리는 사건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는 우리 삶의 복잡한 결들을 중층적으로 반영한다. 따라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우리는 나의 삶과 겹치거나 유사한 어떤 삶을 다시 사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모든 개인의 삶이 녹록하지 않듯이 위대한 소설을 읽어 내기가 녹록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러한 데서 연유한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위대한 영화에서도 비슷하게 경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마치 나의 복잡한 삶을 견디고 직시하며 깊은 의미를 찾아 나가듯이 위대한 소설과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럴 때 비로소 우리는 각자가 처한 삶의 맥락을 따라 소설의 복잡하고 어렵지만 통찰력이 가득한 세계관을 이해함으로써 작품이 선사하는 의미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예전에 한 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다시 상기해 본다. 정확하게 당시의 감정을 소환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책을 완독하기 위해 인내했던 기억은 뚜렷하게 남아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 공감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 그리고 책장을 어렵게 넘기며 읽다가 만난 어떤 아름답고 빛나는 문장과 구절이 던져준 신선한 충격과 여운을 기억한다. 늘 그렇듯 그렇게 만나게 되는 뛰어난 어떤 장면은 결국 내가 잊었거나 갈망했던 욕망이나 결핍과 만나 삶을 충만하게 살찌우는 힘이 된다.
요즘 유행을 따라 범람하는 짧고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우리의 지친 삶을 위로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짧은 콘텐츠를 보고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때로는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내 삶을 다시 반추하고 살피면서 긴 호흡의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는 깊이 있는 독서의 소중함 또한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것이 위대한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