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쌓인 길을 간다. 비단이불을 깔아 놓은 듯 형형색색 곱고도 황홀한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난다. 초록 일색이던 나뭇잎들이 때깔 곱게 물든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떨어진 잎새마다 인생의 말년을 보는 듯 경건해진다. 늦가을 정취가 오늘따라 마음을 홀린다. 고운 잎 하나 주워 그리운 이에게 연서라도 띄워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무심코 우편함을 열어보니 관제엽서가 있다. 구순을 바라보는 은사님께서 보내주신 엽서다. 일전에 펴낸 나의 수필집에 대한 격려와 축하의 글이 적혀있다. 순간 고맙고도 반갑기 그지없다. 노 은사님은 중학교 때 국어를 가르쳐주신 스승이시다. 까맣게 잊고 산 세월이 오 십여 년인데 문학을 지도하신 교수님을 뵈러 간 자리에 함께 계셨다. 무명한 제자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이라고 주시는데 그간 찾아뵙지 못한 자괴감에 민망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후에 축하엽서를 보내주시다니 가슴이 뭉클하다. 반백 년을 지나 선생님의 손글씨를 접하니 한번 스승은 영원하다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숙연하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어느새 미수를 지난 연로하신 선생님 앞에 옛날의 열정은 사라지고 왜소한 노구가 착잡하기만 하다.
하루빨리 답장을 보내 드려야 하겠기에 우체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우편엽서를 한 묶음 주문하자 갓 입사한 듯 보이는 젊은 직원이 관제엽서가 뭐냐고 나에게 되묻는다. 내 설명이 불충분했는지 점장에게 가더니 마침내 창고에서 꺼내다 준다. 언제부턴가 오래된 것과 옛것에 애정이 가는 것은 나이 듦의 미학일까, 네모난 누런 엽서에 케케묵은 사연들이 주저리주저리 떠오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60원짜리 우편엽서가 유행했었다. 대학생이 된 오빠는 청바지와 통기타 그리고 팝송을 부르며 신문화의 척도를 달리듯 하더니 엽서에 편지 쓰기를 즐겼다. 그때만 해도 나의 우상 같던 오빠를 흉내 내는 게 유일한 자랑거리며 즐거움이었다. 어깨너머로 기타 코드를 배우는 것과 엽서는 지적 호기심과 허영에서 비롯된 내 십 대의 낭만이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시 한 구절을 적어서 보내기도 하고 고전에 나오는 고매한 글귀를 베껴 호감을 사기도 했다. 학교 앞 문방구 옆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이 나를 알아보고 웃어 주던 추억이 그립다. 계절의 소회나 사춘기의 감성을 간단한 편지글로 적어 돈독한 우정을 나누던 풋내기의 아류였다. 게다가 모든 내용이 공개되니 군대 간 오빠에게 보낸 위문엽서를 상사가 읽고 나에게 호감을 보이던 어둑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시대적 산물과 같던 엽서는 나름 내 글쓰기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친구로 만난 남편과 주고받은 엽서도 우리를 이어주는 사랑의 끈이 된 셈이다. 몇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별빛이 드는 창가에서 수많은 밤을지새며 고뇌하던 시간 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매일매일 한 통씩 주고받던 사연들이 사랑의 싹을 틔우고 진솔하게 나누던 고백들이 서로에게 믿음을 주는 사이가 되었다. 결혼할 때까지 모은 엽서는 긴 서랍장을 가득 채웠고 우리 사랑의 징표가 된 셈이다. 묵은 엽서 더미에서는 삭은 나뭇잎 냄새가 났다. 가끔 남편에게 보냈던 내가 쓴 엽서를 읽노라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닳아 오르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라고 이사를 다니면서 빛바랜 엽서들을 갖고 다닐 수가 없어 언젠가 모두 소각했다. 이따금 가슴에 남겨둔 시어들을 들추어 보기도 하지만 낭만을 읊조리던 그때의 추억은 세월의 뒤편에 뉘엿뉘엿 사라져 간다.
은사님이 보내신 관제엽서를 품에 안고 옛 시절의 향수에 젖어본다. 빠르게 진화하는 세월에 지금은 사라져간 추억…. 엽서 한 장을 펴 놓고 노 선생님을 그리며 어떤 글을 써야 하나 머뭇거리고 있다. 낙엽이 수북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