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가꾸며

2021.04.14 17:04:15

박영희

수필가

오롯이 봄의 빛깔을 뿜어내는 자연의 신비에 마음도 살며시 봄꽃으로 물들어 간다. 따사로운 봄의 숨결처럼 능선을 따라 피어나는 연두 빛 새순사이로 꽃구름의 운무에 감탄이 절로난다. 산 너머 숲을 헤집고 멀리서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는 무논에 써레질을 하시던 아버지의 구릿빛 얼굴을 어슴푸레 스치고 간다. 색은 추억이고 환상이고 기호라는 말처럼 형형색색의 보드라운 봄의 색체는 청춘이듯 열정이듯 꿈이 아니던가, 비루한 일상에 다시 희망을 품었을 아버지의 봄 풍경이 아련하다. 파란 윤기를 머금고 촘촘히 돋아나던 풋풋한 마늘 순, 묵은 지푸라기냄새 그리고 담 모퉁이 노란 골담초 꽃을 따먹던 고향의 봄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마음을 파고든다.

귀소본능인걸까? 어느새 부모님의 나이가 되고 보니 고요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듯 조그만 텃밭하나 가꾸고 싶다는 꿈을 꾸어 본다.

좁다란 베란다에 꽃을 키우며 망울진 꽃에서 기억속의 어머니도 만나고 이따금 떠오르는 시심으로 습작의 뜨락을 거닐 듯 나만의 텃밭을 꾸며보기로 하였다. 마침 동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가까운 곳에 땅을 사볼까· 농사에 문외한인 처지에 주말농장규모를 가지고 땅을 사자니, 여러모로 생각이 분분한데 뒤 늦게 무슨 농사를 시작하느냐고 반대를 한다. 시내 외곽에 있는 사위의 회사 안에 텃밭을 만들고 남을 넓은 공터가 있다. 하는 수없이 그 공간에 농사를 짓기로 하니 설렘임도 잠시 묵은 땅을 어떻게 개간을 해야하나하는 걱정이 앞선다. 우리의 소문을 듣고 발 빠르게 마을 이장님이 오셨다. 나의 포부·를 들으시고 농사는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다 시며 농사야말로 애정을 쏟는 만큼의 열매라고 하신다. 순식간에 트랙터로 땅을 일구고 객토용 퇴비를 붓고 검정 비닐 덮개를 씌워 작물을 심을 긴 고랑을 만들어 놓았다. 하나 둘 셋 넷......아뿔싸, 고랑을 들여다보니 텃밭이 아니고 그야말로 한 뙈기밭으로 족해 보인다. 농심이라는 아무런 마음가짐도 없이 섣불리 농사를 시작했다. 여기는 고구마, 이곳엔 옥수수, 고추를 주 종목으로 심고 나머지는 손주들의 자연학습장을 삼아 참외 수박 메론 피망 토마토 단 호박까지 일체의 모종들을 심기로 했다. 소꿉장난 같은 나의 발상들은 상상만으로도 기쁨 충만이다.

그 옛날 우리 집 헛간에 걸려있던 괭이 삽 낫 호미 같은 농기구들을 떠올리며 농기구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읍내가게에 진열된 농기구를 둘러보는 순간 농부이셨던 부모님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먹먹해 진다. 난생처음 나의 호미를 사려는 순간 어머니의 몽당호미가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다. 이토록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이 수많은 세월 어머니의 손끝에서 몽당 숟가락처럼 닳아 없어지다니, 물건 하나하나에 지나간 부모님의 숨결이 느껴지는데 나의 속내를 모르는 딸은 계산을 끝내고는 어서 나오라고 재촉을 한다. 우리 남매의 첫 농사는 고구마 심기를 우선으로 했다. 농사꾼의 딸로 자라 어릴 적 어깨너머로 학습한 것이 고작이니 모든 게 생소하기만 하다. 모종심기를 시작하는데 "누나! 고구마 심을 줄 알지? 응 아까 고구마 모종상인에게 배웠지..."

어제내린 비로 손을 감싸는 진흙의 감촉이 더욱 보드랍다. 나는 비스듬히 줄기를 밀어 넣고 동생은 꼿꼿이 줄기를 세운다. 그리곤 어릴 때 아버지가 고구마 심는 것을 보았다며 동생은 자기가 옳다고 우겨댔다. 나는 농사도 진화한다며 모종상인에게 배운 대로 시범을 보이며 비스듬하게 고구마 순을 심었다. 시골인심은 여전히 훈훈했다. 우리의 무지를 지켜보던 이웃 밭의 노인장이 고추모의 간격을 정해주시고 옥수수와 심기를 도와주셔서 모종심기는 무사히 일단락되었다. 식물에게도 생명의 신비는 경이롭기만 하다. 어느새 땅내를 맡은 여린줄기들이 바람결에 나폴 거린다. 긴 이랑에 파릇하게 피어나는 농작물들을 보니 내 자식처럼 살갑고 예쁘다. 다독다독 흙을 북돋아 주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식물과 마음을 교감하고 수확의 날을 기대해 본다. 과연 우리의 첫 농사는 어떤 열매를 소출 할 수 있을까,

밭 가운데 서서 성경에 있는 씨 뿌리는 비유를 떠올려 본다. 더러는 길가에, 또는 돌작 밭에 혹은 가시 떨기에 뿌려진 씨앗과 옥토에 뿌려진 씨앗이 있다. 결국 옥토에 뿌려진 씨앗만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나는 과연 어떤 밭에서 자란 열매일까, 문득 수많은 날들을 옥토로 가꾸며 육남매를 길러내신 부모님의 자식농사야말로 백배의 수확이 아니던가,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일곱 근의 땀방울을 흘려야하는 것이 농사라시며 자식농사야 말로 일미칠근 이상이더라고 말씀하시던 부모님, 올곧은 마음에 사랑이 뭔지를 가르쳐준 부모님의 일생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헛간에 걸려있던 거미줄 싸인 괭이와 쇠스랑 그리고 아버지의 빈 지게의 풍경을 반추하며 내 마음의 밭도 옥토로 가꾸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잠겨본다. 남겨진 모종들을 마음의 밭에 옮기는데 영희야 "사랑이라는 씨앗을 파종해 보렴...." 밭고랑 사이로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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