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교실의 동상이몽

2017.02.26 15:18:16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동상이몽'은 우쭐한 시인에서 파렴치한 성폭행 혐의자로 추락한 배용제 시인의 시 창작교실 이름이다. 배씨는 경기도의 한 예술고등학교 실기교사로 재직하면서 개인 창작실인 '동상이몽'을 열었다.

그리고 대학입시와 등단을 미끼로 하여 교묘히 성추행과 성폭행을 일삼았다. 레슨비를 받아가며 성을 착취한 것이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행한 장소가 시를 공부하는 창작실이었기에 아무도 범행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필이면 외부의 눈을 피하여 범죄를 저지른 장소의 이름이 '동상이몽'이었다는 점이 꺼림칙하다. 순수한 열망으로 시를 배우고자 했던 학생들과 성범죄자 배용제가 얽힌 기막힌 상황을 이보다 더 확실히 함축한 단어가 없을 것 같아서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은 한 자리에서 같이 누워 자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이다. 겉으로 보기엔 같이 행동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각기 딴생각을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사자성어가 창작교실의 속사정과 기막히게 일치하는 점이 놀랍다.

그렇다면 10대 청소년을 위협해서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를 입힌 늙은 호색한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동상이몽'이란 간판을 걸었던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의혹의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배씨의 시집 제목까지 그의 행동과 연관되어 보인다.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그는 다정, 달콤한 감각, 삼류극장에서의 한때, 그래도 그리움은 남아서 등의 시집을 내며 활동했다.

배씨의 사건이 알려진 것은 몇 달 전인 지난해 10월이다. 중견시인과 원로 소설가등 10여명의 문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이 잇달아 트위터 글을 올렸다. 배씨도 가해자 무리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배씨의 범죄행위가 특히 파렴치했다. 창작지도를 핑계로 어린 학생들을 한 명씩 작업실에 은밀히 부른 그는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피해자들을 기망했다. 아무런 의심 없이 가르침을 받으려 창작실을 찾았던 소녀들은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50대 남자의 능란한 술수에 대책 없이 희생됐다.

배씨가 어린 여고생들에게 지껄였던 야설은 차마 낯이 뜨거워 옮기지도 못할 만큼 저질스러웠다. 그는 어린 여고생들에게 변태 행위를 강요하고 나체 사진이나 성관계 장면까지 촬영했다.

피해 학생들이 거부하면 틀을 깨야만 작품을 잘 쓸 수 있다고 회유했다. 성에 대해 무지했던 소녀들에게 성적인 희롱을 '자유로운 문학적 언어 표현'이라고 세뇌한 것이다. 냄새나는 늙은 선생은 '내 말 하나면 누구 하나 매장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식의 조폭스런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폭로로 성추행과 성폭행 사실이 꼼짝없이 드러나자 배용제는 자신의 트위터에 '사과문'이라는 글을 올린다.

사태의 장본인이라고 신분을 밝힌 뒤 "폭력이라는 자각도 없이, 단 한 번의 자기 성찰도 하려 하지 않은 채, 많은 일들을 저질러왔다"고 혐의를 인정했다. 몇몇 아이들과 가진 성관계를 실토하며 계획된 출간과 공식적인 활동을 접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뻔뻔한 사과문을 열어 본 피해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위계(僞計)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인정하지만 그것이 '합의된 행위'였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며 분을 터트렸다. 법적 처벌을 받겠다는 내용이 빠진 채 자숙과 절필을 면죄부인양 내세운 점도 불쾌해 했다.

최근 시인 배용제는 피해자들의 바람대로 구속됐다. 경찰이 밝힌 지저분한 죄목은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력에 의한 미성년자 간음), 아동복지법 위반(성희롱) 혐의 등이다.

배씨가 구속되면서 지금 떨고 있는 예술계의 인사들이 제법 되리라 짐작한다. 모두가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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