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자리에 천거한 닭

2017.02.05 14:51:38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설이 지나고 입춘을 맞았다. 벌써 2월, 그러나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입춘일을 새해의 첫 날로 생각한 명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제부터 새해라고 위안을 삼아본다.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다.

말귀 어두운 사람을 닭대가리라 놀린다. 이처럼 닭은 어리석고 머리가 나쁜 동물로 비하됐다. 그러나 닭은 똑똑한 새다. 놀랍게도 닭이 7세 어린이 수준의 추론과 유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부화한 병아리의 양이 적당한지를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숫자 인식 능력이 있으며 간단한 연산도 가능하다. 서열을 정하는 등 '자기인지' 능력과 두려움, 기대, 분노 등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의사소통 방식도 다양해서 시각적 변화를 통해 의사표시를 하며 구애부터 위험 신호까지 최소 24가지의 다양한 울음소리를 낸다. 다른 닭의 모습과 인간의 얼굴을 100가지 이상 기억하고 구분할 수 있다.

닭은 능청스럽게도 속이는 능력이 뛰어나다. 수컷 닭은 먹이를 찾았을 때 소리를 내 암컷을 불러들이는데, 이따금은 먹이가 없을 때도 암컷을 유혹하려 비슷한 소리를 낸다. 닭을 해치는 포식자를 발견한 수탉은 경고음을 내는데 주변에 수탉만 있을 경우엔 경고음을 절대 내지 않는다. 다른 수탉이 잡아먹혀 라이벌이 제거되면 더 많은 암컷을 차지하게 돼 저에게 이득이 오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닭대가리라는 표현은 욕이 아니라 칭찬이지 싶다.

옛사람들에게 닭은 명예와 출세의 상징이었다. 닭의 벼슬을 관(冠)이라 여겨 관직에 오름을 벼슬을 얻었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입신과 공명을 기원하는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서재에 닭 그림을 걸었다.

닭 그림은 무엇과 함께 그렸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관을 닮은 벼슬이 있는 닭과 관의 모양을 한 꽃인 맨드라미를 함께 그려 입신양명을 기원했고 풍요한 모란을 닭 그림에 넣어 부귀를 소망했다. 사군자인 국화는 장수를, 석류는 다산을 소원하는 것이었다. 화목하고 다복한 가정을 기원하려는 마음에선 어미 닭과 병아리를 같이 그린 그림을 걸었다.

노(魯)나라 애공(哀公) 때의 충신 전요(田饒)가 사람대신 닭을 관직에 추천한 일화는 큰 교훈으로 회자된다.

간신들에게 놀아나 국사를 돌보지 않는 군주 애공에게 실망한 전요는 사직을 고하며 자신의 후임으로 닭을 천거했다. 전요의 상식에 어긋난 기행에 크게 노한 애공이 '어찌 벼슬자리에 사람 대신 닭을 천거하느냐'며 역정을 내자 전요는 군주에게 자신이 닭을 천거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 아뢰었다.

"닭은 다섯 가지 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머리에 관을 썼으니 문(文)이요, 다리에 발톱이 있으니 무(武)이며, 적 앞에서는 물러나지 않고 싸우니 용(勇)이고, 모이를 나눠 먹으니 인(仁)이며, 밤을 지켜 때를 어기지 않고 알리니 신(信)입니다. 그래서 오덕(五德)을 두루 갖춘 닭을 천거하는 것입니다."

닭이 가진 다섯 가지 덕목인 계유오덕(鷄有五德)이다. 닭보다도 못한 간신배들에게 놀아난 군주에게 차라리 닭을 곁에 두라고 들이댄 전유의 용기가 짜릿하다.

오상(五常) 역시 닭의 다섯 가지 덕에 대한 칭송이다. 서로 불러 골고루 모이를 나누어서 먹는 인(仁), 싸움에 임했을 때 물러서지 않는 기상인 의(義), 머리 위에 단정한 관을 바르게 쓴 예(禮), 항상 주위를 둘러보고 지키는 지(智), 아침마다 어김없이 새벽을 알리는 신(信)을 합하여 오상(五常)이라 했다.

문과 무의 조건을 갖췄다는 자타 칭 인재는 넘쳐나지만 용기와 신의가 있으며 따뜻한 가슴을 갖춘 벼슬아치는 자취조차 희미한 작금, 닭을 천거했던 전요의 심정이 동병상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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