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보다 '충주 101'

2017.01.08 16:22:55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충주시가 새내기 공무원 합격 수기를 영상으로 제작해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올렸다. 공교롭게도 신규 임용 공무원 수 101명이 걸 그룹 멤버 선발 오디션인 '프로듀스 101'의 선발 인원과 일치했기에 홍보영상물의 제목을 '충주 101'로 붙였다고 한다.

걸 그룹 오디션의 핑크색 이미지 사진을 거의 베낀 공무원 홍보 패러디 간판을 보는 순간 손발이 오글거린다. 영상물을 클릭하니 서바이벌 걸그룹 '프로듀스101'의 '픽미(pick me)'가 쏟아진다.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 너와 나 꿈을 나눌 이 순간/ 달콤한 너를 향한 샤이닝 라이트"

청소년 취향의 깜찍, 발랄, 요란한 이 노래가 우리 귀에도 제법 익숙한 것은 지난 제 20대 총선의 새누리당 로고송으로 쓰여서다. 새누리당은 당시, 투표를 통해 최종 합격자를 뽑았던 '프로듀스 101'의 아이돌 후보생 이미지를 새누리당 후보와 비유하자는 의도에서 '픽미'를 선택했다고 밝혔었다.

아무튼 날 뽑아달라고 애걸하는 I want you pick me up이란 가삿말이 정당 선거로고송을 넘어 지방공무원 합격 홍보물에까지 먹힌 꼴이다.

'충주 101' 영상물은 지금 소개할 세 사람이 2012년엔 맨홀 안, 독서실, 제천평택 고속도로 현장에서 일했다는 자막을 흘리며 시작된다. 도입부터가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문구다. 독서실이야 공부를 하는 곳이니 그렇다 치자. 그러나 맨홀 안이나 고속도로 현장이 근무해서는 안 될 부끄러운 직장이란 말인가.

첫 번째로 소개된 합격자는 충주 신니면사무소의 홍모 주무관이다. 하수도 공사 업체에 다니던 그는 2012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형에게서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란 말을 듣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하수도 맨홀 작업을 하고 화장실 변기를 뚫으며 생활하던 그는 처음으로 인생에 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는데, 마침 고교 시절 은사에게 "자네 고 2때 꿈이 공무원이었어"란 말을 듣고 형과 함께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기약 없이 시험 준비 중인 형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 성실한 동생에게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라며 당당하게 충고를 한 상황도 유쾌하지 않았으나 수기의 배경음악이랍시고 설정한 '서른 즈음에'는 직업에 대한 비하보다 더 거슬린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도대체 이 노래를 왜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동생의 처지에 빗댔을까. 부족한 머리로는 이해가 힘든 설정이다.

홍씨는 각고의 노력 끝에 원하던 공무원 합격증을 받았다. 사고로 병상에 있는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니 장한 성과다. 그러나 공무원이 되기 전에도 홍씨는 사회의 모범인 훌륭한 청년이었다. 머리를 왁스로 세우고 클럽이나 기웃거릴 20대에 하수도의 맨홀에 들어가 땀을 흘린 홍씨와 같은 청년은 흔치 않다.

공무원이 되기까지 저마다의 사연과 공부과정을 담은 홍보영상을 보고 난 느낌은 비슷하다.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룬 점은 박수를 받을만하지만 지자체가 나서서 마치 공무원이 꿈에서라도 이루어야할 최고의 목표처럼 자화자찬하는 것은 당치않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안정적인 면을 본다면 공무원은 만족스런 직장이다. 해고될 걱정이 거의 없다. 제때에 어김없이 급여가 입금된다. 신분보장 또한 확실하다. 혜택 많은 연금에 경쟁상대로 인한 스트레스도 없다. 젊은이들이 전공은 뒷전인 채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이유들이다.

선진국의 척도는 공무원 선호도와 반비례한다는 연구가 있다. 불안정하고 불공평한 사회일수록 공무원이 인기가 많다는 설이다. 안정성을 좇아 공무원에 목을 매는 대한민국의 불안한 상황이 그래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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