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웃는다

김애중의 에세이 풍경

2015.10.25 19:00:09

김애중

요즘 웃는 일이 많아졌다. 이 사람을 만나도 반갑고 저 사람을 만나도 반갑다. 산에 가도 즐겁고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해도 즐겁다. 남편이 아침에 집을 나가 밤늦게 들어와도 들어와서 좋고, 집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어도 곁에 있으니 좋다. 무언가 특별히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고 하다 보니 매사 즐거워진다. 남편은 이러는 나를 보고 득도를 했냐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한동안 맘껏 웃지 못했었다. 작년 가을부터 지난달까지 약 10개월 동안 복잡한 일에 시달리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새 웃음을 잃어버렸었다. 억울함과 자책감으로 큰 바위에 짓눌린 것처럼 늘 마음이 무거웠었다. 마음이 무거우니 몸이 알아챈다. 여기저기 아프고 늘 피곤한 상태가 이어졌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좌우명처럼 '그래도 웃는다'라는 말을 수시로 되뇌며 마음훈련을 시작했다. 얼마나 가상한가. 그래도 웃는다라니…….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나는 웃겠다는 거 아닌가. 내가 생각해도 정말이지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웃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

예전에도 억지로 웃으려고 애쓴 기억이 있다. 10여 년 전 쯤 큰 병원에 열흘 정도 입원하고 있으면서 힘들어 할 때였다. 곁에 있는 환자들도 비슷한 처지여서 다들 시무룩하고 무표정했다. 정말이지 웃을 일이 없었다.

어느 날 병원 복도를 걷다가 우연히 웃음치료시간을 알리는 안내문을 보게 되었다. 무료하기도 해서 한 번 참여해봤다. 강의 핵심내용은 억지로라도 웃어라, 그러면 몸이 알아채고 기분을 좋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강사가 시키는 대로 억지웃음을 지어가며 소리 내어 웃어본다. 하지만 그 이상한 웃음소리는 처음엔 내게 울음처럼 들렸다. 그러다 억지로 웃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워서 진짜로 웃게 된다. 박수도 치고 배도 두드리며 심지어는 바닥을 동동거리며 웃기도 한다. 서로를 쳐다보며 그 모습에 또 한바탕 웃는다. 나중엔 정말로 재밌어서 웃는다.

그 웃음치료가 약간의 효과는 있었다. 조금 부자연스럽긴 했지만 한바탕 웃음으로 인해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그 뒤로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았다. 가짜 웃음으로 나를 속이는 것만 같았다. 억지웃음 또한 작은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진짜로 나를 웃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다.

우선 싫어하는 일을 덜하고 좋아하는 일을 늘려가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화나는 일이 줄어들고 웃을 일이 점점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았다.

웃음은 강한 전염성이 있다.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남이 웃으면 따라 웃고 내가 웃으면 다른 사람이 함께 웃는다. 서로 덩달아 즐거워지니 이보다 좋은 게 무엇이랴. 웃음이 헤프면 경박해 보인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웃음의 종류를 찾아보니 이런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자신을 낮추며 웃을 때 하하하(下下下), 좋은 감정을 가지고 웃을 때 호호호(好好好), 기뻐하며 살짝 웃을 때 희희희(喜喜喜), 마음을 비워야 할 때는 허허허(虛虛虛) 웃는단다. 건강에 제일 좋은 웃음은 박장대소다. 박수를 치고 몸짓을 크게 하면서 10초 이상 웃으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엔돌핀 같은 호르몬이 더 많이 생긴다고 하니 여럿이 함께 웃는 것이야말로 보약이나 다름없다. 최근에야 내가 웃어야 할 이유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웃게 해주는 일이 너무도 많은데 그동안 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아침에 밝은 해가 떴음에 감사하고 함께 밥을 먹을 가족이 있음에 웃을 수 있다. 밖에 나가면 다정한 친구를 만날 수 있고 노래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나날이 재롱이 늘어가는 손자와 예쁘게 잘 살고 있는 아들 며느리도 나를 웃게 해준다.

이제는 좌우명을 '그래서 웃는다'로 바꿨다.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아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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