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 글쟁이들

김애중의 에세이 풍경

2015.08.02 18:17:13

김애중

자작시 '마음으로 온 사랑'을 낭송하는 숙현님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고요한 낮 / 풀잎이 흔들리면 / 바람이 지나간 흔적임을 / 알 수 있듯이' (중략)

낭송이 끝나면 시에 대한 해석을 덧붙인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절절한 내용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박수치게 한다. 다른 회원들도 공감하는 부분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석 같은 시간을 즐기는 이 사람들은 '글타래' 회원들이다. '글타래'는 옥산도서관 1인 1책 펴내기 프로그램의 다른 이름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숙현님은 퇴직한 남편과 함께 서울에서 옥산으로 이사와 8년째 귀촌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적한 시골이 마냥 좋았는데 점점 무료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음이 외로워지면 수시로 서울로 올라가 친구들을 만나고 오기도 했지만 돌아오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찾은 곳이 옥산도서관이다. 규모는 아주 작지만 도서관을 통해 시골마을에서 부닥치게 되는 문화적 갈증을 조금씩 해소하고 있다.

상진님은 적절한 유머와 재치로 '글타래' 분위기를 한껏 부풀게 하는 멋쟁이 회원이다. 회원들로부터 미호천 시인이라 불리는데 세 줄로 된 짧은 시 '미호천'을 처음 소개했을 때 생긴 별명이다. 한우 키우는 일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소를 주제로 한 시를 발표해 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미호천 강 너머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노을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그는 아직 글 쓰는 데는 인색하다. 그러나 언젠가 꽤나 괜찮은 글을 쓸 것이라고 회원들 모두 기대하고 있다.

미용실을 운영하며 틈틈이 글쓰기를 하고 있는 희숙님은 모범생 회원이다. 꼬박꼬박 손 글씨로 진솔한 글을 써 와 강사님의 칭찬을 독차지한다. 일찌감치 남편을 잃은 그녀의 수필에는 굴곡진 인생이 오롯이 들어 있다. 혼자 힘으로 겪은 삶의 애환과 고난을 통해 깨달은 온갖 지혜들이 담겨있다. 또한 미용실에서 만나게 되는 마을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도 엿보인다. 시골미용실이라 자칫하면 남의 험담이나 하고 엉뚱한 소문만 만드는 곳이 될 수도 있을 텐데 희숙님의 글쓰기 덕분에 손님들도 덩달아 글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이환님은 시사성을 가진 네 컷 만화와 함께 글을 쓰는 사람이다. 사회적인 문제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름대로 깊이 생각하고 연구한다. 촌철살인의 한 마디가 빛나는 만화를 볼 때는 모두가 감탄하게 된다.

회원들 모두 이 시간만큼은 문학소녀, 소년이 된다.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고 좀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글의 소재는 시공을 넘나든다. 옛날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부터 지금 손자들의 재롱담까지, 어린 시절 그 많던 꿈에서부터 사후 세계에 대한 상상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인생관이나 연애관에 대해서도 토론은 거침없다. 인생 중반을 넘긴 사람들의 풍부한 경험 속에서 나오는 현명한 결론들이 쏟아진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아픔과 고통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가치관을 서로 나눌 수 있다.

추억을 회상하며 깔깔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한다. 인생을 정리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꿈꾸기도 한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과정 속에서 수없이 오고가는 이야기들이야말로 진정 우리 모두를 살찌우는 영양분이다. 그래서 '글타래'는 너무나 소중하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참 좋아서, 오래도록 친구로 지내고 싶어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한다. 자칭 옥산의 글쟁이들이라 농치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들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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