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착(放下着)

2015.02.08 14:25:06

송보영

충북여성문인협회장

"바다 그리워 깊은 바다 그리워. 남한강은 남에서 흐르고 북한강은 북에서 흐르다가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한강 되어 흐르네. 아름다운 사람아!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이현주의 시 장사익 노래에서>

가슴으로 읽히는 한편의 시에 장사익님 특유의 음색이 녹아들어 울림이 절절하다. 남한강의 발원지는 어디이며 북한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그 먼 길을 돌아 두물머리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서로 여기에서 만났으니 내 안의 것들을 모두 버리고 함께 손잡고 한강으로 가자한다. 아름다운 사람아!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 내 안의 것들을 버리라 한다.

북한강이 북에서 부터 두물머리까지 흘러오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강물의 심장 속으로 스며들었으리라. 북쪽의 옥말봉에서 발원하여 강물 되어 흘러오면서 담아온 시린 삶의 이야기, 그 곳의 산천에 피고 지는 꽃 이야기, 재잘대는 새들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푸른 물결 안에 깃들었으리라. 창죽동 금대산 응추나무골 고목샘에서 부터 시작된 여울물이 냇물이 되고, 작은 강물이 되고, 남한강이 되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그 역시도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하나 가득 품어 안고 왔을 게다. 이제 그 둘이 한 곳에서 만났으니 그들은 함께 한 곳을 향해 가야한다. 두강물의 지향점인 한강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가슴에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흐르는 물에 풀어 놓아 함께 부등켜안고 속살 비벼대며 진통의 날들을 견뎌 내며 흘러가야 할게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해원의 바다에 이르러 그들이 북한강이었을 때, 남한강이었을 때를 기쁘게 추억하며 오래도록 함께 살아갈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 그 둘이 만나 하나 되기 위해서는 내 존재의 근원이 시작 되면서 내 안에 자리하기 시작한 속성들을 비워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부터인지도 가늠 되지 않는 오랜 날들 동안 내 가슴 안에서 어느 것과도 동화되지 않으려고 버팅 기는 자아를 도려낸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나를 부인하고 그가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 되어 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까지도 기꺼이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이 한 몸 되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둥지를 틀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빚어지려면 서로를 위한 끝없는 헌신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랑이다. 죽어야 사는 것임을 깨닫고 함께 손잡고 가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방하착(放下着), 내안의 것들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모진 고통이 수반 되어야만 아집과 집착을 버릴 수 있음이기에 그렇다. 나를 녹여내기 위한 끝없는 담금질을 통해 빈 그릇이 될 때 그 안에 생수의 강이 넘쳐흐를 수 있음이다. 비워냄이 없는 채움이란 있을 수 없다.

오늘도 그는 나를 향해 절절한 소리로 집착을 내려놓으라 한다. 쉴 새 없이 돋아나는 쓴 뿌리들을 뽑아 버리라 한다. 고체가 되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팅기고 있는 것들을 도려내라 한다. 해가 서산마루를 넘으려 하는데 무에 그리 아쉬움이 많아 내려놓지 못하느냐며 채찍질을 하고 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하나가 되려면 그들이 담아온 이야기들을 풀어내야만 하듯이,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 만나 둥지를 틀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을 두고 서로의 가슴속에 머물고 있는 자아를 내려놓아야 하듯이 내안의 아집들을 버리라 한다.

비워내고 채우기를 반복하면서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긴 날들을 살아내는 동안 사랑이란 이름은 모두 소진되고 없다. 사랑이 곰삭아지면서 만들어낸 측은지심이 있을 뿐이다. 이는 어쩌면 사랑의 깊이에 버금가는, 아니 더 깊은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측은지심이 잡은 손을 놓을 수 없게 한다. 그것이야말로 남은 삶을 함께 살아내는데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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