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 서리가 흠뻑 내렸다. 농익은 가을이다. 떠나기 싫어 머뭇거리는 초가을 햇살을 훠이훠이 몰아내며 겨울을 예고하는 기세등등한 바람이 불어온다. 고운 빛깔들로 찬란했던 나의 정원에도 마른 잎 서걱대는 소리로 가득하다. 된 서리를 흠뻑 맞아야 알이 탱탱하게 영글고 제대로 단맛을 낸다기에 그대로 두었던 서리태를 거두어 들였다. 여기저기 틈새로 남아 있는 땅이 아깝기도 하고 땅을 소중히 여기는 농부들보기에 부끄럽기도 하여 심어만 놓으면 잔손 갈일이 별로 없다기에 심은 서리태다. 콩대를 뽑아 한 곳에 모으니 제법 많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열매로 보아 거둘 알곡도 많을 것이라 싶어 흐뭇했다.
지난해의 경험으로 보아 말리지 않은 콩을 그대로 냉동 보관하여 먹는 것이 감칠맛이 더 한 것 같아 올 해에도 그리 하기로 하고 콩을 콩대에서 분리하여 껍질을 까기로 했다. 양이 많은 것 같지만 도리깨질을 할 만큼은 아니고 키질도 할 줄 모르기에 손으로 까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콩을 까면서 보니 의외로 쭉정이가 많은 것을 보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인즉 콩 묘를 낼 때 너무 촘촘히 심은 탓이었다. 포기와 포기 사이가 넓어야 햇살이 고루 비추고, 바람이 제대로 드나들어 옹골차게 여물 수 있는 것인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거리두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였다.
까놓은 콩에서 벌레 먹은 것과 쭉정이를 골라내려는데 흠집이 있는 콩이 너무 많아 여의치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골라내지 않으면 안 된다. 썩거나 벌레 먹은 것을 그대로 두면 밥맛을 망칠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검정 콩밥을 맛나게 먹으려는데 벌레 먹거나 썩은 것이 씹히는 순간 달콤하면서도 고소해야 할 본래의 맛은 사라져 버리고 쓴 맛만이 감돌아 밥맛을 그르치고 만다. 참 이상한 일이다. 상한 것 보다는 제대로 영근 것이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상한 콩의 떨떠름하고 씁쓰름한 맛만 느껴지니 말이다. 밥맛을 그르치게 하는 데는 여러 개의 썩은 콩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
한두 알의 벌레 먹은 콩이 전체의 밥맛을 좌우 하듯이 사람과 사람사이를 허무는 일이나 조직을 무너트리는 일도 아주 작은 틈새에서 비롯된다.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인간관계도 너무 밀착되어 있으면 보지 않아도 될 허물이 보이고 스스럼없는 사이라고 격의 없이 대하다 보면 관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제 되지 않은 감정의 배설물이 넘쳐 질척해지면 다시 보송보송해지기란 쉽지 않다. 본래의 관계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살뜰히 살펴가며 골라 놓은 서리태를 다문다문 넣어 찰진 밥을 지으며 생각해본다. 제대로 여문 콩을 거두려면 콩 묘를 낼 때부터 알맞게 거리를 두고 심어 그에 필요한 햇살과 바람의 입맞춤이 있어야 하듯이, 오래도록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켜야할 도리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이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거대한 조직이 허물어지거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는 것 또한 한 작은 틈새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요즈음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대한항공의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작은 틈새 사이로 불어오기 시작한 여린 바람이 감당 할 수 없을 만큼 세찬 바람으로 돌변하여 불어대고 있다. 대한항공도 옳지 않은 일만 한 것이 아닐진대, 안타깝게도 잘한 일들은 드러나지 않고 잘 못된 일들만 드러나는 것을 보면 이를 인정 할 수밖에 없다.
전체의 밥맛을 좌우하는 한두 알의 썩은 콩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저들을 보며 내 안을 들여다본다. 내 성품 어딘가에 썩은 콩의 속성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싶어서다. 이를 찾아내어 도려내는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리라.